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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신라말 고려초의 호족연합정치

저작시기 2003.10 |등록일 2004.07.2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머리말
Ⅰ. 호족과 호족연합정권의 개념
1. 호족의 개념
2. 호족연합정권의 개념
Ⅱ. 호족영합정치의 운영실태
1. 호족들과의 인적·사적 결합
2. 제도적 결합
1) 기인제도
2) 사심관제도
3) 광평성체제
4) 순군부 및 광군
5) 내봉성과 내의성
Ⅲ. 호족과 왕권의 관계
맺음말

본문내용

Ⅲ. 왕과 호족의 관계
고대의 전제적 왕권체제, 즉 견제 받지 않는 통치권의 행사는 상층 지배집단 사이에 권력투쟁을 몰고 왔다. 이러한 현상은 삼국통일 이후 지방세력들의 영향력 확대로 점점 더 심화되었다. 지방유력자들은 국왕에 의해 임명되었지만, 그 지방에서는 그를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위계체제나 관념을 편성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전의 통치체제가 국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전제체제였다면, 그것이 갖는 획일성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즉 지방호족이나 유력자들에 의한 세력권이 형성되었으며, 그 결과 둘 사이에는 갈등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의 전개가 신라 말부터 후삼국까지의 정치상황이었다. 왕실 중심의 획일적인 계서의식에 맞섰던 지방호족이나 유력자들은 각기 그 나름의 통치체계를 모색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 여려 세력들 사이의 균형적 결합체로 등장한 것이 고려였다.
나말여초의 왕조교체기에 있어서 정치 사회적 변동을 주도한 세력은 주지하던 바와 같이 호족이었다. 이들은 지역과 시기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지방의 토지와 주민을 장악하고 통치권을 행사하는 독립적인 세력으로서, 특히 후삼국시대에는 정치적 상하 관계를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존재였다.
따라서 후삼국시대의 국가라는 것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개 호족연합정권에 불과하였다. 즉 유력한 호족이라도 단독 세력으로 정권을 영위할 수는 없었고, 크고 작은 호족들이 연합하여 국가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후삼국의 왕들은 호족들에게 유화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태조 왕건도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궁예를 제거하고 왕위에 오른 그의 입장에서 호족들을 포섭하는 문제는 매우 절실하였다. 결국 태조의 호족 포섭정책은 성공하여 상주의 아자개, 강주 장군 윤웅, 하지현 장군 원봉, 명주 장군 순식, 진보 성주 홍술 등 각 지역의 유력한 호족들이 고려에 귀부해 왔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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