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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갑신정변

저작시기 2004.04 |등록일 2004.07.2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3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제 1 장 서론
제 2 장 19세기 후반의 시대적 상황
제 3 장 개화사상(開化思想)의 성장과 개화운동(開化運動)의 발전
제 4 장 김옥균의 생애
제 5 장 김옥균(金玉均)과 갑신정변(甲申政變)
제6장 김옥균과 갑신정변의 역사적 위치
제7장 결어

본문내용

제 1 장 서론

조선에 있어 19세기 후반기는 일대 전환기(轉換期)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조선이 동양중심의 사회로부터 벗어나 서구라는 이질적(異質的)인 세계와 국제관계가 다변화(多變化)됨으로써 이제까지 고착(固着)되어 오던 조선의 가치질서에 커다란 동요를 일으켰으며 외세(外勢)의 도전(挑戰)과 영향이 한국민(韓國民)의 구체적 현실생활에 까지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동요(潼搖)와 외세(外勢)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하여 조선 내에서는 적절한 대응책(對應策)이 마련되어야 했다. 때문에 당시의 진보적(進步的)인 사상가들은 하루속히 조선이 개화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진 외국문물을 적극적(積極的)으로 수용(受容)함으로써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룩해야 한다고 인식했다. 결국 개화(開化)를 이룩하지 못한다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써 퇴보함은 물론 국가 명맥(命脈)이 유지(維持)되기 어렵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이렇게 볼 때 개화사상은 외세의 도전에 대한 강한 현실적인 대응책의 일 방편이었다고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화사상가(開化思想家)들 사이에도 개화의 방법을 둘러싸고 의견을 달리하여 두 파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는 당시 정계와 얽혀 발전하게 되었는데 즉, 한 파는 전통적인 체제를 주시하면서 점진적으로 개화를 이룩해야 된다는 온건론(穩健論)을, 다른 한 파는 주로 20~30 대의 청년들로 구성(構成)되어 모든 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화해야 한다는 급진론(急進論)을 폈다. 이 경우 전자는 수구당(守舊黨) 혹은 사대당(事大黨)이라 칭하고 후자를 개화당(開化黨) 혹은 독립당(獨立黨)이라 칭하고 있다. 어떻든 개화의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의 대립은 마침내 하나의 요인으로 간직한 채 갑신정변으로 발전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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