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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 근대 화학의 아버지, 라부아지에 그의 화학체계 속으로

등록일 2004.07.1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라부아지에의 이론 핵심인 산소의 발견을 중심으로-

본문내용

18세기 화학혁명에서 라부아지에가 기여한 정도는 더할 나위없이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의 이론을 중심으로 화학이 발전해
왔다는 것에도 의의를 제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론 역시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지는 못하였으므로, 현대적 관점에서 접근해 보면 몇가지 맹점은 존재한다. 그리고, 방법적인 면에서 여러 과학자, 특히 프리스틀리의 자의적인
도움이 아닌 도용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라부아지에는 그의 독창적인 생각아래서 새 이론을
제시하며 현상을 연구하였으므로, 이만으로도 그의 업적은 길이 평가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밀리칸의 유적 실험처럼,
아무리 현상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실험이 있더라고 해도, 그를 어떻게 실험하고, 정의하는 가에 따라 이론은 그 설득력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라부아지에는 사고의 전환을 통해서 화학혁명의 주인이 된 것이고, 그에 반해 프리스틀리는 기존의 패러다임 내에서만, 사고를 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그의 열소설 (熱素說, Caloric Theory)은 열을 일종의 물질이라고 보는 이론으로 17세기에서 19세기 중엽에 걸쳐 주장되었다. 열의 실체는 열소(熱素:caloric)이며, 온도가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흐르는 유체(流體)와 같은 것인데, 무게를 잴 수 없는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열소설과 대립되는 이론으로서 열운동론도 옛날부터 주장되어, 금속을 두들기거나 마찰시키면 열이 발생하는 것을 근거로 R. 보일이나 R. 훅, R. 데카르, R. 베이컨 등이 열을 입자의 운동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라부아지에가 원소표에서 열소를 원소로 다룬 다음부터는 열소설이 우세해졌고, N. 카르노의 열효율이론에 이용되기도 했다.
1798년 G. 럼퍼드는 대포의 포신을 깎는 작업 도중에 금속의 마찰에 의해 다량의 열이 발생하는 사실을 발견하고 열소설에 반대하는 실험을 했다. T. 영은 이를 지지하여 열운동론을 주장 했지만 열소설을 뒤집을 수 없었고, 40년 후에 J. 줄이 열의 일당량을 발견하여 열과 일의 등가성(等價性)을 밝힐 때까지 열소설은 그 명맥을 유지했다. 이처럼 라부아지에의 이론은
그 화학적 혁명의 영향이 시대 패러다임을 지배했다는 점에서 혁명이라 평가할 수 있는 것이며, 약간의 맹점이 존재하지만
그의 천재성이 입증되었고 현대 과학에 지대한 영향은 미쳤다는 점에서는 아무도 감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참고 자료

․과학사의 이해 (정원우외 4인 共著)
․화학의 혁명 (오진교 著)
․에피소드 과학사(오석호 著)
․http://cont1.edunet4u.net/cobac2/chemistry/chem15.html 화학의 혁명을 주도한 라부아지에
․http://www.kaeri.re.kr/3_6_2_6.htm 근대화학의 창시자 앙뚜안 라부아지에
․과학동아 1999년 1월호 - 유지영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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