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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연산군에대한 재조명

등록일 2004.06.2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목차

머리말

1. 당시의 시대적 배경
ㄱ. 풍요로웠던 시대
ㄴ. 왕권 대 신권의 대립구조

2. 갑자사화와 무오사화에 대한 재해석
ㄱ. 무오사화(戊午士禍)
ㄴ. 갑자사화(甲子士禍)

3. 그 외의 사건들에 대한 재해석

맺음말

본문내용

역사는 연산군(燕山君)을 폭군(暴君)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믿고 따르기에는 위험한 요소가 다분하다.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된 역사는 패자를 왜곡된 사실로 기록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연산군에 대한 역사적 사실 또한 그러한 위험적인 요소를 포함할 우려가 다분히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연산군을 왕위에서 쫓아낸 반정세력(反正勢力)을 승자라고 한다면, 연산군은 패자로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를 통한 연산군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어렵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연산군의 행적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산군일기》에 대한 냉철한 사료 비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연산군일기》가 반정세력에 의해 편찬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러한 작업은 필수적인 것이다. 《연산군일기》에 나타난 연산군에 대한 평가는 승자인 반정세력(反正勢力)에 의해 이루어졌으므로 연산군에 대한 평가가 왜곡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까지 이러한 작업, 즉 《연산군일기》에 나타난 연산군의 행적(行績)에 대한 정밀하고도 총체적인 사료비판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비록 사료 비판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리학적인 기준을 그대로 받아들여 진행되었기 때문에 반정세력의 입장을 옹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성리학(性理學)의 기준에서 볼 때 연산군을 폭군으로 몰아세우기에 좋은 사건들이 연산조에 적지 않게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사림세력(士林勢力)이 대거 죽임을 당한 무오사화(戊午士禍)와 갑자사화(甲子士禍)가 그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화는 중종 때도 일어났다. 중종 때 일어난 기묘사화(己卯士禍)가 그 규모나 참혹성 면에서 연산조의 사화보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역사는 중종을 폭군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을 보더라도 연산군에 대한 평가가 왜곡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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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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