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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세사] 몽골의 후계자들

등록일 2004.06.21 | 최종수정일 2018.03.1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3페이지 | 가격 2,500원

소개글

칭기스칸에서 쿠빌라이의 원나라 건국..몽골제국의 멸망까지 상세하게 다룬 레포트입니다..심혈을 기울여서 다양한 참고문헌을 읽고 준비한 만큼....다운받아보시면 좋은 자료가 되실 겁니다..^^

목차

1. 머리말

2. 몽골의 후계자
2-1. 몽골의 친족 개념과 후계자 계승
2-2. 대칸이 되기 위한 조건
2-3. 쿠릴타이와 후계자 계승

3. 몽골제국의 대칸 계승
3-1. 칭기스칸의 후계자들
3-2. 대칸 우구데이(太宗)
3-3. 투르게네의 攝政
3-4. 대칸 구육(正宗)
3-5. 오굴 카이미쉬의 攝政
3-6. 대칸 뭉케(憲宗)
3-7. 뭉케의 계승자

4. 元의 建國 - 元의 황제 계승
4-1.대칸 쿠빌라이(世祖)
4-2. 카이두의 대항
4-3. 테무르 울제이투(成宗) 황제
4-4. 이후 왕위 계승

5. 元의 몰락

6. 한족의 왕위계승문제

7. 청조의 황태자비밀결정제도

8. 맺음말

9. 參考文獻

본문내용

3. 몽골제국의 대칸 계승
3-1. 칭기스칸의 후계자들
칭기스칸(太祖)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으며 칭기스칸 생전에 울루스와 유르트 울루스(ulus):일정 수의 부족, 유르트(yurt): 그 부족들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목지
를 속령으로 받았다. 4명의 아들은 조치와 차가다이, 우구데이, 톨루이였다. 그러나 첫째 아들인 조치는 칭기스칸에게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에 후계자라기보다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조치’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조치는 몽골어로 명사로는 ‘외부에서 온 존중해야 마땅한 사람’ 즉, ‘손님, 방문자’라는 뜻이고, 형용사로는 ‘외래의, 남의’라는 뜻이다. -르네 그루쎄, 김호동 외 2인 역,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사계절, 1998, p368
조치도 칭기스칸의 이러한 생각을 알았으므로 칭기스칸이 주도하는 遠征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이는 칭기스칸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칭기스칸은 조치가 謀反을 計劃한다고 의심하여 공격을 준비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1227년 2월에 조치가 먼저 죽음에 이르면서 부자간의 葛藤은 끝났고 조치의 속령은 그의 아들인 바투가 모두 받게 되었다.
나머지 後繼者인 3명의 아들들에 대해서 살펴보면, 둘째인 차가다이는 차갑고 고지식한 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엄격한 판관이자 군인이었다.

참고 자료

申採湜, 『東洋史槪論』, 三英社, 1993.
라이샤워 외, 김한규 외 역,『東洋文化史』, 을유문화사, 1991
朱成天, 『중국 대륙을 움직인 사람들』,고려원, 1986
쟝위싱, 허유영 역, 『중국황제 어떻게 살았나』지문사, 2003
찰스 허커, 박지훈 역, 『中國文化史』,한길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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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그루쎄, 김호동 외 2인 역,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사계절, 1998.
박원길, 한국몽골학회 학술총서Ⅰ『유라시아 초원제국의 역사와 민속』, 홍기원, 2001
스기야마 마사이키, 임대희 역, 《몽골 세계제국》, 신서원, 1999
박환영, 《몽골의 가족과 민속》, 한국몽골학회, 1996
김종래, 《바람에 새겨진 역사》, 자우출판사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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