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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 일본의 외교정책

등록일 2004.06.1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2차 세계대전부터 현재까지 일본의 외교를 열거해 놓았습니다. 가격에 비해 무척 많은 자료가 담겨 있습니다. 후회없으실겁니다..

목차

1.점령 하 일본의 외교 (1945년 8월 15일~ )
독립국가의 조건(1950년 ~ )
경제대국 외교의 원형(1960년대 ~ )
자립적 협조의 모색(1970년 ~)
국제국가의 사면과 고뇌 ( 1980년대~ )
냉전 후 일본 ( 1989년 ~ )
일본의 외교 결정 기구

본문내용

1.점령 하 일본의 외교 (1945년 8월 15일~ )

외교란 대외적인 정책과 교섭이다. 외교권과 주권이 없는 상태에서 외교가 성립할 수 있었는가......?
국가와 국가간의 교섭이 외교이다.
점령하의 일본은 외교권을 포함한 주권을 잃었다. 그러면서도 '대외교섭'은 존재했다. 일본은 연합군 최고 사령관(이 후 맥아더)과 GHQ와의 교섭이 그 것이다.

먼저 점령하의 일본의 환경 즉 미국과의 관계를 정의
참전이전에 미국은 일본의 '전후 계획'(군정)을 수립하고 있었다. 영국의 처칠과 <대서양 헌장>에서 전쟁 후 모든 국민에게 자유, 평등, 평화를 보장하는 신세계를 주창하는 한편, 헐(Cornbell Hull)국무장관에게 비밀리에 전후 세계모습을 연구하라고 지시한 것이 그 내용이다. 1942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세계대전에 참가한 미국의 루즈벨트는 일본의 항복을 쉽게 허용하지는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을 군사적으로 완전히 타도하지 않은 사실의 다시 세계대전을 일으킨 요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43년 1월 카사블랑카 '무조건 항복'을 주장했고,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에서 일본의 영토에 관한 방침도 정했다. 미?영?소 중심의 강대국 협조에 의해 전후 질서를 잡아 평화를 지킨다는 <포츠담 선언>에 근거하여 일본의 항복 후 군 기관과 내각, 의회, 주요 정부기관 해체 및 점령 군정의 입법 기관 및 행정기능 및 최고 권력 장악을 확정했다.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선언>을 통한 일본의 조건부 항복을 유도하였으나, 일본 정부에 의해 묵살되었으며, 그 결과 3일과 9일 원폭투하와 소련의 대일 참전을 야기했다. 이때 소련의 스탈린은 예상했던 것보다 관동군의 저항의 미약했던 탓으로 여력을 모아 사할린과 치사마, 훗카이도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9일 대일본 참전의 가능했고, 아울러 미군에 훗카이도 북부지역 절반만을 소련 점령지역으로 요구했다. 포츠담 회담 전 미국은 소련과 영국을 염두에 두어 소련과의 분할통치를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의 항복을 소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얻었기에 스탈린의 조건을 거부하고, 분할점령이 아닌 미군정을 실시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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