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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당대 산동반도에 신라교민

등록일 2004.06.1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1,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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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당대 산둥지역의 신라교민촌

Ⅲ. 신라원과 신라관 및 구당신라압아소(勾唐新羅押衙所)

Ⅳ. 산동의 신라교민과 신라.

Ⅴ.맺음말

본문내용

당대(當代)에 설치된 귀의주(歸義州; 지금의 하북성(河北省) 용성현(容城縣)부근)는 ≪구당서(舊唐書)≫에 "귀의주는 총장연간중에 설치되었는데, 바다 밖의 신라사람들을 머물게 한 것으로서, 유주도독(幽州都督)에 속하여 있다. 관할하는 현이 하나인데, 호(戶)가 195, 인구가 624명이다" 라고 기록된 것을 통해, 신라인(新羅人)들의 이민주(移民州)가 당(唐) 고종(高宗)이 통치하던 시기인 총장(總章; 668∼670) 연간에 설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근 200호에 이르는 600여명의 신라인(新羅人)들이 당(唐)나라 경내에 거주하게 된 엔닌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주지하다시피 한반도(韓半島) 동남단에 위치해 있던 신라(新羅)는 일찍이 당(唐)과의 군사적 동맹을 통하여 660년과 668년에 백제(百濟)와 고구려(高句麗)를 차례로 멸망시켰다. 신라인(新羅人) 의 설치는 바로 한반도에서 통일전쟁이 끝난 후에 설치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신라 이민들은 당나라 군대를 위한 후방부대원으로서, 전후 수당군(戰後 隋唐軍) 의 요구에 의해 중국 경내로 이주해 와 "귀의(歸義)"라고 명명되었을지도 모른다. 당(唐)나라의 일반 주현(州縣)이 모두 만 여명에 이르는 규모였음을 고려하여 볼 때, 귀의주(歸義州)의 인구 규모가 특히 작은 것이 외국 이민에 대한 행정구역상의 특수성을 반영해 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唐)나라 경내의 신라(新羅) 교민(僑民)들은 상술한 것처럼 순수한 주현(州縣) 행정구역상의 형식으로서 한 곳에 거주하게 된 것은 아니다.

참고 자료

신현식 외 <신라인의 실크로드>, 백산자료원, 2002
김명희, <중국 수·당사 연구>, 국학자료원, 1998
황민지 저, 임대희 역, <중국 역사상의 불교와 경제(당대)>, 서경, 2002
누노메 조후외 저, 임대희 역, <중국의 역사(수·당·오대)>, 혜안, 2001
아서라이트외 저, 위진·수·당 사학회 역, <당대사의 조명> 아르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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