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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노동자 농민운동

등록일 2004.06.1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근현대사 시간에 쓴 레포트입니다..
책을 직접 요약하며 쓴 것이구요.. 인터넷 자료는 별로 인용을 안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겹치는 일은 없을겁니다^ ^

목차

서문
Ⅰ.농민운동
Ⅱ.노동자운동
결론

본문내용

제 1차 세계대전 중 일본에서는 자본의 급속한 축적으로 말미암아 농민의 대량 이농과 도시 노동자의 급증이라는 사회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일시적으로 식량수급을 왜곡시켜 1918년 일본 각지에서 쌀을 요구하는 도시민중의 폭동이 일어나기까지 하였다. 국내에서 쌀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자 일제는 조선 쌀 수탈을 강화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여 하였다. 이에 따라 입안된 것이 산미증식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1910년대에 구축된 쌀 단작형 농업생산체계를 기반으로 하면서 토지개량과 수리시설을 확충을 통해 쌀 수탈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1925년까지 토지개량은 목표치의 3/4에 그쳤고 농사개량은 거의 전무했으며 농민들의 저항 역시 거셌기 때문이다.
이에 일제는 계획을 수정, 1926년부터 제2기 계획을 집행하였다. 총독부는 식민지 지주들에게 일본 대장성 예금부와 식산은행 등의 저리자금을 융자받을 수 있도록 알선하여 이들을 산미증식계획에 끌어들였다. 이때는 특히 강조된 개간과 수리시설 정비를 통한 토지개량사업에 조선농민이 동원되었지만 개간 후 아무런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다. 수리조합비 역시 과장하게 부과되어 자작농이 토지를 팔고 소작농민으로 전락하였을 뿐 아니라 중소지주조차 몰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직 일본인 지주 등 상당 재산을 갖춘 대지주만이 이 사업을 통해 토지소유를 확대할 수 있었다. 산미증식계획이 진행되면서 소작농민 수탈도 한층 강화되었다. 지주들은 수리조합비를 소작농에게 떠넘겼으며 생산과정에 대한 간섭도 강화하였다.

참고 자료

한국 역사, 한국역사연구회 지음, 1992, 역사비평사
한국독립운동사강의, 한국근현대사학회 역음, 1998, 한울아카데미
한국경제사, 장시원 이영훈, 2002,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일제하한국농민운동, 조동걸, 1979,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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