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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점수C

[문학계열] 신경향파문학과 1920년대 프로시론-김기진

등록일 2004.06.09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한 학기동안 준비한 발표자료입니다^-^
프로문학, 신경향파에 있어서 김기진은 박종화, 박영희보다 더 먼저 연구되어야 하는 인물인만큼 그 문학사적 위치가 상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책을 읽고 밤을 세워가며 작성한 논문식 발표자료입니다.(선생님이 논문식의 발표문을 요구하셨기에) 어느정도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을 그대로 다운받아서 제출하는 것은 참아주셨으면 좋겠네요~들키면..전 몰라요^-^;ㅋㅋ
참고로 칭찬받은 자료!!^ㅁ^입니다.

목차

신경향파문학과 1920년대 프로시론-김기진
1.《백조》의 붕괴와 신경향파문학의 선창
1)프롤레타리아文學(新傾向派文學)의 受容에 기여 한 金基鎭
2)《백조》붕괴와 新傾向派文學

2. 김기진의 詩論

3.金基鎭과 朴英凞의‘形式-內容論爭’

본문내용

1920년 《開闢》에서 태동되어 《新生活》지에서 주창되었던 프롤레타리아문학은 1923년 후기부터는 동경 유학생이던 김기진에 의해 본격적으로 수용되어 본 궤도에 오르고 실제적인 운동이 전개된다.
일본 사회주의 문학을 국내로 옮겨온 김기진이 동경 유학 중이던 1920년대 초는 국제적으로 露 ․ 日전쟁과 제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의 성공이 힘입어 세계적으로 사회전반에 거쳐 심각한 영향을 끼치던 때이다. 일본에서도 명치 연대부터 일기 시작한 민권운동이 이에 자극받아 마르크스사상 즉, 사회주의 사상이 팽배해 가던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 속에서 식민지하에서의 지식인 김기진에게 영향을 준 것이 中西伊之助의 소설「赭土に芽ぐれきの」이다. 일본인에게 억압받으면서 빈궁하게 살아가는 조선인의 생활을 그린 이 소설을 읽은 그는 지금까지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명제에만 애착을 가진데 대하여 조국을 보는 눈이 일본인 中西伊之助만도 못하다고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하기 시작한다.

ꡒ김군, 김군은 대학을 출석하는 것이 문학을 배우는 것이고 앞으로 위대한 작가가 되는 길인 줄
아시오? 톨스토이를 러시아의 거울이라고 레닌은 말하지 않았소. 김군은 조선의 거울이 되시오. 그렇게 되려면 고국에 돌아가서 씨를 뿌리시오! 김군이 자기 생전 그 씨의 수확을 못할지라도 좋다는 결심으로 해야 하오. 투르게네프의 『처녀지』와 같이 조선이라는 ‘처녀지’에 사회변혁의 씨를 뿌리고 개척할 때란 말이오.ꡓ

이것은 김기진이 유학시절 알게 된 일본의 저명한 사회주의자 마생구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이미 그 때 일본의 분위기를 "사실 그 당시 일본 안의 프롤레타리아 싸움은 맹렬하여서 어쩌면 가까운 시일 내에 일본혁명이 일어날 것 같았다."고 본 그에게 프롤레타리아문학의 수용은 당연한 일이었다. 즉 마생구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후 그에게 문학적 집념을 갖게 해 준 소설이 바로 위에서 언급한 일본 프롤레타리아작가인 中西伊之助의 「汝等の背後より(너희들의 배후에서)」였다. 그래서 당시 일본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던 잡지《種蒔の人(씨뿌리는 사람)》에 매혹되어 자신도《백조》를 조선의《種蒔の人(씨뿌리는 사람)》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당시의 희망이었다고 회고했다. 더구나 이 잡지가 프랑스 유학 중 바르뷔스의 클라르테 운동에 감화를 받은 小牧近江에 의해 발행되었다는 사실과 또 「바르뷔스와 로맹 롤랑의 논쟁」이 특집으로 다루어졌다는 사실도 김기진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그 자신"일본에 있을 때 사회주의운동에 영향을 받아 로맹 롤랑과 앙리 바르뷔스의 논쟁문을 읽고서 나는 나의 사상에 중대한 전환을 일으켰다"고 고백하고 있다.

참고 자료

박명용,『韓國프롤레타리아 文學 硏究』, 글벗사, 1992,
임규찬 . 한기형,『신경향파시기의 프로문학』, 태학사,
한계전,『한국현대시론연구』, 일지사, (1983, 5),
朴英凞,「文藝批評家의 態度-동무 金基鎭 君의 評論을 읽고」
金基鎭,「文藝月評-散文的 月評」, 조선지광, (1926, 12).
김기진,「시가의 음악적 방면」, 조선문단 11호, (1925, 8).
김기진,「예술의 대중화에 대하여-신년은 이 문제의 해결을 요구」, 조선일보, (1930, 1. 1~1. 14).
金基鎭,「社會意識過程에 順應한 藝術」, 조선지광 75호, (1928, 1,),
金基鎭,「클라르테 運動의 世界化」, 개벽 제 39호, (1923. 9~10).
金基鎭,「너희의 양심에 고발한다」, 개벽, (1924, 8).
金基鎭,「今日의 文學, 明日의 文學」, 開闢 제 44호, (1924, 2)
김기진,「麻毛씨와의 어느날」, 문학사상, (197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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