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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김유신

등록일 2004.06.06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900원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금관가야 왕조의 가계
2. 구해왕(仇亥 또는 구충, 구형) 백성을 위해 나라를 바치다.
3. 김무력(金武力) 관산성(菅山城)에서 백제왕을 베다.
4. 김서현 만명부인을 만나 신분적 콤플렉스를 해결하다.
5. 김유신 태어나다.
6. 김유신 화랑도를 이끌다.
7. 김유신 삼국통일의 영웅이 되다.

Ⅲ. 결론

본문내용

신라의 법흥왕 19년 금관국(金官國)의 왕 김구해(金仇亥)는 왕비와 세 아들 즉 맏아들 무종(武宗), 둘째 아들 무덕(武德), 막내아들 무력(武力)과 함께 나라에서 보관하고 있던 보물을 가지고 법흥왕에게 항복하였다. 이로써 금관가야는 신라의 금관군이라는 한 지역으로 편입되고 시조 김수로로부터 이어져 구해왕에 이르는 491년의 역사를 마치게 된다. 구해는 잦은 외적의 침입과 백성의 생활이 도탄에 빠진 것을 한탄하며 스스로 백성을 구제하기 위하여 나라를 신라에 바친다. 비록 자신이 나라를 판 것으로 낙인찍혀 후대의 웃음거리가 되더라도 백성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이로써 구해는 신라의 귀족층에 편입되어 그 후손들이 신라에서 살게 된다.구해가 신라에게 나라는 바친 일은 이미 예정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서론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고구려의 침입으로 국력이 쇠퇴되었던 것이 원인이 되어 신라의 끊임없는 침입에 견디지 못하고 멸망하게 된다. 그 외에도 원인을 찾자면 가야는 여러 부족의 연맹체로 신라나 백제 등과 같이 중앙집권적 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채 분열을 거듭하다가 결국은 멸망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김부식지음, 이강래옮김,《삼국사기》, 한길사, 2002
일연지음, 이재호옮김,《삼국유사》, 솔, 2002
이종욱,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김영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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