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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세사] 고려의 도교와 풍수지리사상

등록일 2004.06.05 한글파일한글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열심히 했습니다^^

목차

Ⅰ. 서 논

Ⅱ. 본 논
1. 도교
도교의 개념
한국의 도교
고려시대의 도교

2. 풍수도참사상
① 고려 태조 왕건의 탄생과 결부된 풍수도참사상
② 훈요십조에 나타난 풍수도참사상
③ 묘청의 서경천도운동과 풍수도참사상
④ 그 밖에 고려에서 정치적으로 풍수도참사상이 사용된 예

Ⅲ. 결 논

본문내용

도교의 개념
황제와 노자를 교조로 삼은 중국의 토착 종교로, 노자와 장자를 중심으로 한 도가사상과 구별된다. 도교는 후한시대에 패국의 풍읍에서 태어난 장도릉이 세웠다고 전하며, 지금도 타이완·홍콩 등지에서 중국인사회의 신앙이 되어 있다. 장도릉은 초기에 오경을 공부하다가 만년에 장생도를 배우고 금단법을 터득한 뒤 곡명산에 들어가 도서 24편을 짓고 신자를 모았다. 이때 그의 문하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모두 5두의 쌀을 바쳤기 때문에 오두미도 또는 미적이라고도 불렸다. 장도릉이 죽자 아들 형과 손자 노가 그의 도술을 이어 닦았다.
장도릉 등이 도교를 일으킨 초기에는 그 신도들이 대부분 어리석었던 탓으로 종교라기보다도 일종의 교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도교가 일반 민중뿐만 아니라 상류 지식층 사이에도 널리 전파되자 체계적인 교리와 합리적인 학설·교양의 뒷받침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필요에 따라 도교가 하나의 종교로서 이론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3∼4세기 무렵 위백양과 갈홍이 학술적인 기초를 제공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구겸지가 전래 종교인 불교의 자극을 받아 그 의례의 측면을 대폭 채택하고 도교를 천사도로 개칭함으로써 종교적인 교리와 조직이 비로소 정비되었다. 이러한 도교의 개념은 '민중도교'와 '교회도교'의 두 가지로 대별된다.

참고 자료

·李丙燾,『高麗時代의 硏究』, 亞世亞文化社(1980)
·車柱環,「高麗의 道敎思想」『韓國의 道敎思想』, 同和出版公社(1984)
·柳炳德,「高麗時代 宗敎思想과 그 特性」『韓國學入門』, 학술원(1983)
·梁銀容,「高麗時代의 道敎와 佛敎」『韓國宗敎』8 (1983)
·國史編纂委員會,「高麗 前期의 宗敎와 思想」『韓國史』16권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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