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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캐서린 그레이엄'의 일대기

등록일 2004.05.30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글을 시작하며
Ⅱ. 캐서린 그레이엄의 부모
Ⅲ. 캐서린 그레이엄의 성장
Ⅳ. 캐서린 그레이엄의 남편
Ⅴ.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
Ⅵ. 캐서린 그레이엄의 사교활동
Ⅶ.국방부 기밀문서 사건과 워터게이트 사건
Ⅷ. 캐서린에 대한 비판
Ⅸ. 글을 마치며

본문내용

캐서린 그레이엄이 가장 크게 유명해진 사건은 워싱턴포스트의 국방부 기밀문서 사건(Pentagon Papers)과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Affairs) 보도이다. 이 사건은 미국 정치와 저널리즘에 아주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국방부 기밀문서 사건은 국민의 알 권리를 대신하는 언론의 자유와 기밀보호라는 정부의 권리가 충돌한 것이다. 국방부 기밀문서사건은 뉴욕타임스가 국방부 비밀문서인 베트남 전쟁 관련 펜타곤 보고서를 입수․보도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먼저 타임스에서 자료를 입수하여 첫보도를 하였으나 정부의 당시 닉슨 정부는 법원을 통해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중단시키는 조치를 취한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그 내용을 기어이 보도하고 말았다. 당시 워싱턴포스트의 법률 고문들은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보도를 유보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편집국장 브래들리와 베테랑 기자였던 프리츠 비비 등은 보도할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 사안은 워싱턴포스트의 사운을 걸만큼 대단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였다. 만약 대법원이 이 보도행위를 간첩법 위반으로 판결할 경우 각종 악영향과 더불어 텔레비전 방송국 허가권 갱신 취소, 주가 폭락 등의 문제가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캐서린이 최종 판단을 내렸다. 그녀는 발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결국 워싱턴포스트가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한 지 2주가 지나 대법원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손을 들어주었다. 권력의 압력에 대하여 굴복하지 않고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끝까지 밀고 나간 캐서린 그레이엄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1년 후 일어난 워싱턴포스트의 또 다른 커다란 사건 보도의 시작에 불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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