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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인종주의와 대한민국

등록일 2004.05.28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서울의 이방인
-일그러진 증오와 멸시의 논리
-인종주의에 대해 더 알기

본문내용

인종주의는 언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이해관계에 따라 조선 땅에 들어왔는가? 1876년 강화도 조약 이전에 조선에 ‘인종차별’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통적인 ‘화이관’에 따른 중화 문명을 배운 화(華)와 그렇지 못한 이(夷)로의 구분은 있었지만, 이는 피부색의 차이가 아닌, 순전히 문화의 차이에 의한 것이었다. 태생적 특징으로 결정되어 빠져나갈 구멍을 주지 않는 ‘인종의식’과는 달리, 중국과 한국의 전근대적인 ‘문화 지상주의’는 너그럽게 오랑캐 탈출의 기회를 준 인본주의적 논리였다.
그러나 인종주의의 수용은 조선의 개항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인종주의의 수용이 비교적 빨랐던 이유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첫째로, 그 당시에 인종주의는 조선의 지배층이 접촉한 제국주의 국가들의 핵심 이념이었다. 서구에 백인 우월주의가 등장한 것은 산업혁명과 인도 식민화 이후의 일이다. 유럽의 대표적인 지성인들은 동양 문명을 원시적이고 퇴영적인 것으로 묘사했다. 더 나아가 제국주의로 변모한 서구는 다윈의 ‘진화론’에 근거를 두어 일체의 ‘비유럽적 전통’을 ‘야만성의 원천’으로 파악하였다. 이러한 시기의 이론들은 일본을 거쳐서 한국의 학자를 통해 조선에 소개되었다. 둘째로, 인종차별론을 처음 수용한 개화파 양반 귀족들의 극심한 엘리트주의를 들 수 있다. 한국 개화파 엘리트 들은 기본적으로 상류층의 선각자들의 우중(愚衆)을 ‘위에서부터 계몽’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이러한 주장은 백인이 ‘미개인’을 차별하는 당시의 백인 우월주의 이론과 맥이 통했다. 또한, 박정양과 유길준 등 조선의 관료들은 부와 강이 압도하는 서양 문물을 비판 없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서양의 지배적 인종주의 패러다임은 그들의 저술 속으로 별다른 여과 없이 그대로 흘러 들어가 버렸다.

참고 자료

[당신들의 대한민국] 박노자 저, 한겨레 신문사
[현대 사회학] 앤터니 기드슨 저, 을유 문화사
[encyber 두산 세계 대백과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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