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조선시대사] 조선시대의 토지제도개혁론: 정전제와 기자정전론

등록일 2004.05.27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 서: 기자정전, 그리고 조선의 평양
1.1 정전제란 무엇인가
1.2 조선시대와 정전제
1.3 조선시대와 기자

2. 정전제, 이상에서 현실로:구암 한백겸의 기자정전론
3. 사림파의 공세
4. 야당의 공세, 집권층의 묵살

본문내용

그러나 이렇듯 이상적인 토지제도인 정전제도와, 이상적인 진유요 왕도의 군주였던 기자는 단지 문헌상으로만 고증할 수 있을 뿐이어서 조선의 유학자를 애타게 하던 차에 마침내 1607년(선조 40) 구암 한백겸은 기자정전론(箕子井田論)을 통해 평양의 남쪽, 대동강변을 따라 위치해 있는 격자형의 유적이 기자정전의 유적이라고 밝혀내었다.

한백겸의 주장의 파장은 대단한 것이어서, 즉각 평양에 기자묘와 기자궁이 지어지고, 심지어 평양의 별칭조차 기성(箕城)으로 바뀔 정도였다. 또한 선조대에 기전도가 간행된데 이어 정조대에는 기자정전에 관련된 각종 자료를 모아 기전고가 간행되었다. 기자묘 및 기자궁도 정기적으로 중수되었는데 숙종대에 기자묘를 중수한 후 건립한 기자묘중수기적비(箕子墓重脩記蹟碑)는 기자동래설에 관하여 가장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는 국내의 사적 중 하나이다. 기자정전에 관한 한백겸의 주장 이후로 간행된 모든 평양 지도 및 평양 풍경도에는 하나같이 평양성 서남쪽 대동강변의 기자정전 흔적을 또렷하게 묘사하고 있을 정도이니 그 파장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또, 조선 순조대의 암행어사 박내겸이 남긴 기행문 "서수록"에서 박내겸은 평양에 출도한 후 평안도 관찰사와 함께 평양 유람에 나서는데, 기자묘, 기자궁, 기자정전을 돌아본 것이 매우 중요한 일정으로 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보건데, 평양을 방문한 타지 출신의 조선 유학자들이 평양에서 꼭 가보고자 했던 곳은 대동문, 연광정, 을밀대 등 잘 알려진 명소보다도 기자정전에 관련된 유적들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