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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 백제의 부흥운동

등록일 2004.05.26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정성들여 쓴 레포트 입니다^^
좋은 자료 됐음 합니다!

목차

Ⅰ.서론

Ⅱ.본론
1. 백제의 멸망
의자왕의 실정
나당 연합군의 침입
2. 백제의 부흥운동
백제 부흥군의 봉기
백제 부흥운동의 전개
백제 부흥운동의 좌절

Ⅲ. 결론

본문내용

武王대에 이르러 백제는 신라와의 잦은 전쟁으로 백성들의 생활은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무왕의 호화로운 사치와 유흥으로 더욱 국력의 소모가 있었다. 무왕은 백제의 도성인 사비성의 남쪽에 宮南池를 파서 물을 멀리서 끌어 드리고, 사방의 뚝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의 가운데에는 仙山과 같은 인공섬을 쌓아놓고 유흥을 즐기는 등의 생활을 하였다. 그의 뒤를 이은 義慈王은 태자시에서부터 사람 됨이 뛰어나고 그의 효성이 지극하여 사람들로부터 海東曾子로 칭송되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641)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외교를 하는 한편 신라를 공격하였다.
왕 2년에 新羅 대야성을 빼앗고 城主 품석과 가족들을 죽였으며, 5년에는 唐이 高句麗를 치기 위하여 新羅 軍士를 징벌하는 틈을 타서, 新羅城 7개를 빼앗고 將軍 의직을 통해 新羅의 서변을 공격하여 10성을 빼앗았다. 左將 은상은 신라의 석토 등 7성을 빼앗으니, 백제의 기세는 하늘에 닿았으며, 신라는 궁핍하게 되었다.
왕 11년에 당에 보낸 사신이 돌아오는 편에 唐 高宗은 왕에게 글을 내려 말하였다.
"海東의 3국(高句麗, 百濟, 新羅)이 서로 戰爭을 일으켜 편할 날이 없으니 서로 원한을 풀고 화목하라고 했는데, 新羅 使臣 김법민의 말에 따르면, 高句麗와 百濟가 서로 힘을 합쳐 新羅를 쳐서 국토가 줄어들고 나라의 위력마저 떨어졌으니, 다만 옛 땅만 찾으면, 서로 和親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 빼앗은 땅은 돌려주고 화친할 것을 권한다. 만일 듣지 않으면 당이 軍士를 내어 戰爭을 일으킬 것이다."

참고 자료

·『百濟의 歷史와 文化』 兪元載, 學硏文化社(1996)
·『百濟史』 文定昌, 人間社(1988)
·『韓國史通論』 邊太燮, 三英社(1999)
·『단숨에 읽는 三國時代史』 최의혁, 넥서스(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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