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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활동]곽재우와 의병활동

등록일 2004.05.26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곽재우의 생애는 1552(명종 7)∼1617(광해군 9)이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이다.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자는 계수(季綬), 호는 망우당(忘憂堂)이다. 경상남도 의령출신으로, 황해도관찰사 월(越)의 아들이고, 조식(曺植)의 외손서이며, 김우옹(金宇)과는 동서 사이이다. 1585년(선조 18) 34세의 나이로 별시(別試)의 정시(庭試) 2등으로 뽑혔으나, 지은 글이 왕의 뜻에 거슬려서 발표한 지 수일 만에 전방(全榜)을 파하여 무효가 되었다. 그뒤, 과거에 나아갈 뜻을 포기하고 남강(南江)과 낙동강의 합류지점인 기강(岐江)위 돈지(遯池)에 강사(江舍)를 짓고 평생을 은거할 결심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머문 지 3년 만인 1592년 4월 14일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관군이 대패하자, 같은달 22일에 의병을 일으켜 관군을 대신해서 싸웠다. 그 공으로 같은해 7월에 유곡찰방(幽谷察訪)을 시작으로 바로 형조정랑에 제수되었고, 10월에는 절충장군(折衝將軍)에 승진하여 조방장(助防將)을 겸하고, 이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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