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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전북 남원 산내면 실상사 지리산 사적지 답사 문화탐방

등록일 2004.05.19 워드파일MS 워드 (doc) | 27페이지 | 가격 2,200원

소개글

한학기에 한번 쓰는 레폿임.
실지 답사 하여 쓰는 것이었으므로 사진 잘 퍼서 이용하시면 좋을듯.. 여느 사진과는 다르니.. ㅎㅎ ^^

목차

1. 서론

2. 본론
1) 퇴수정(退修亭)
2) 옻칠장 김을생(金乙生)
3) 실상사(實相寺)돌장승
4) 천년고찰, 국토의 비보
5) 지리산 천년송
6) 마한의 마지막 별궁인 달궁과 계곡

3. 결론

본문내용

현재의 남원지역은,고룡군(古龍郡)-대방군(帶方郡)-남대방군(南帶方郡)-대방주(帶方州)-남원소경(南原小京)-대방군(帶方郡)-남원군(南原郡)-남원부(南原府)-남원도호부(南原都護府) 등으로 변천하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계에서 현재의 남원은 처음에는 고룡이라 하였고, 때로는 대방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또한 용성(龍城,고려 공민왕9년 남원부의 별호,조선 철종4년 남원읍의 별호)이라 애칭되기도 하였다.(참고로 용성초등학교도 있다.)따라서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보면, 서기 15년 처음 나의 고향 남원이 고룡군으로 불려지기 시작한 후 742년만이 757에 남원(南原)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그러나 백제의 수도(위례성)에서 볼 때 현재의 남원은 남쪽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남방(南放)’이라 하였다는 기록도 있고 그 뒤 백제가 멸망하고 이 지역을 당나라 군대가 지배하게 되면서 옛날의 한사군이 설치되었던 북쪽에 있던 대방군의 이름을 본 따 이곳을 ‘대방군’또는 ‘남대방군’이라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통일신라 때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나누고 난 뒤 이곳을 ‘남원소경’이라 부르게 되었는데,당시 신라의 수도 경주를 중심으로 이곳 남원이 서남부지역에서는 가장 그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쪽의 근원이라는 의미로 ‘남원’이란 지명으로 바꾸었다. 뿐만 아니라 노령산맥과 소백산맥이 서남쪽으로 길게 뻗어 그 사이에 분자를 이루고 있는 남원은 지정학적으로 사람의 목구멍과 같이 중요한 위치였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참고 자료

국립지리원.1987. 地名由來集 [서울]: 建設部國立地理院
전북향토문화연구회,편 1994 南原源洞鄕約 전북: 全北鄕土文化硏究會,
남원지편찬위원회. 1992 南原誌 /. [南原] : 南原市 : 南原郡 ,
남원시 2003 남원통계연보남원: 남원시
서정섭 2002 (서교수의)남원·지리산 이야기 서울: 북스힐
남원문화원, 편 2001 남원의 문화유산 남원: 남원문화원
국립전주박물관 편 2000 南原의 역사문물 서울: 國立全州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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