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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사문학론] 이후백, 허강, 강의 시조의 이해

등록일 2004.05.17 한글파일한글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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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이후백
1.작가소개
2.작품세계

허강
1.작가소개
2.작품세계

강익
1.작가소개
2.작품세계

본문내용

_청련 이후백(靑蓮 李後白)_
1)작가소개
1520(중종15)∼1578(선조11).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광탄면 발랑리에 묘가 있다. 자는 계진, 호는 청연, 본관은 연안, 관찰사를 역임한 숙성의 증손이며 국형의 아들이다.
9세에 양친을 여의었음에도, 상예에 조금의 어긋남이 없을 정도로 지극한 효성을 나타내 고을에서 칭송이 자자하였다. 어려운 가운데도 학문에 열중하여 1535년(중종30) 향시에 장원하였다. 곧 상경하여 이의건, 최경창, 백광훈 등에게서 배우고, 1546년(명종1)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무원주서를 거쳐, 1558년 승무원박사로 사가독서하였다. 그 뒤 전한이 되고, 이어 시강원설서, 사서, 정언, 사간, 병조좌랑, 이조좌랑 사인등을 역임하였다. 1567년(선조 즉위) 원접사의 종사관이 되어 명나라 사신을 맞았고, 그해에 동부승지에 발탁되었으며, 이어 대사간, 병조참의를 거쳐 도승지를 지냈다. 1571년 정시문과에 장원하고, 이어 예조참의, 홍문관부제학, 이조참판을 역임하였으며, 1573년 변무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인종의 비인 인성왕후가 죽어 복제문제가 일어나자 3년상을 주장하여 그대로 시행되었다.
1574년 형조판서를 거쳐 이듬해 평안도관찰사로 나가 민심을 바로잡고 국가 기강을 세우는데 힘썼다. 그 후 이조판서에 올라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인재를 등용함에 신중을 기하였고 사사로운 정분이나 뇌물로써 접근하는 소인배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한다. 이후 양관의 제학을 지내고,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이렇듯 놓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가난하고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어, 찾아온 손님이 보잘 것 없는 대우를 받아도 머리를 숙이는 일이 많았다. 말년에 휴가를 얻어 함안에 성묘를 갔다가 59세의 일기를 마쳤다. 부음을 접한 사람들은 "정이품에 사람이 없어졌다"고 크게 슬퍼하였다.

참고 자료

1.시조의 이해, 윤영옥, 영남대출판부, 1986
2.명시조 강해, 김동준, 보고사, 1993
3.고시조 해설 감상, 최상일, 태을출판사, 2000
4.한국 시조 대사전, 박을수 편저, 아세아문화사, 1992
5.청구영언 해의(상), 김영호, 삼강 문화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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