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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현대예술)다다이즘

저작시기 2005.01 |등록일 2004.04.23 | 최종수정일 2015.03.22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예술은 죽었다.
에술이여 영원하라.

우리의 머리는 사고의 방향이 바뀔 수 있도록 둥근 형태로 되어 있다.
-피카비아(Francis Picabia)-

만약 불멸의 예술이란 것이 있다면 예술숭배사상을 쳐부순다해도 그것 자체는 없애지 못할 것이다. -헤르츠펠데(Wieland Herzfelde)-

1914년을 강타한 중대한 사건은 전쟁이었다.
전쟁은 그 외에 소위 문화국이라 불리우는 나라들의 무분별한 상호파괴 행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였다.
모든 미술이 그 이전의 전위미술 특히 표현주의 까지도. 전쟁을 만드는 기계의 부속품으로서 배척되었다.
또한 상징주의. 미래주의 표현주의 등 특정 경향을 공격하는 선언문들도 덧붙여졌다.
1916년 여름에 이르러 이 그룹의 작업과 목표가 '다다(Dada)'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다.[Dada는 '목마'라는 뜻의 어린이말]

1. 쮜리히다다 (1915-1920)
제1차 대전 시에 지리적으로는 맨 중앙에 있었지만 중립을 지켰던 스위스의 특히 긴장이 고조된 상황은 다다운동에 적합한 여건을 제공하였다.
차후의 다른 운동들을 양상하고 유발한 스위스 다다운동은 1916년 연초에 쮜리히의 <카바레 볼테르 Cabaret Voltaire>에서 탄생하였다. 전쟁을 피하였으되 전쟁의 중심부에 위치한 이 도시에서 매우 다양한 개성의 소유자들이 후에<하나의 운동>을 촉발시킬 하나의 무리로 형성될 수 있었다. 오로지 이렇게 짓눌려진 분위기 속에서나 인간들은 비록 근본적으로는 상이한 인간들이긴 하지만 하나의 효율적인 공동체로 통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다는 어떻게 탄생하였는가?
제1차 대전의 발발 초엽이었던 1915년, 작가이자 연극 연출가였던 발은 가수이자 시낭송자였던 여자 친구 에미 헤닝스를 동반하여 스위스에 도착하였다. 발은 키가 컸지만 야위었으며 얼굴이 살짝 얽은 모습이었다. 그는 사상가들과 시인들의 나라(독일) 출생이었는데 당시 그 나라에는 수많은 다른 문화활동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발은 이 모든 활동에 관심을 보였으며, 그는 철학자이자 소설가였고 또한 동시에 캬바레 배우이자 시인, 언론인 그리고 신비주의자였다.

참고 자료

Hans Richter dada, 미진출판사, 1985
미쉘 시누이예, 다다(파리와 독일), 열화당, 1992
미셀 시누이예, 다다(쮜리히, 뉴욕), 열화당, 1992
박선규, 현대예술도 예술인가, 신월출판사, 1997
노버트 린트, 20세기의 미술, 예경출판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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