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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마고]에 나타난 프랑스 종교전쟁(신-구교대립)

등록일 2004.04.23 한글파일한글 (hwp) | 25페이지 | 무료

목차

1. 영화 [여왕 마고]의 시대상
1) 16세기 프랑스 카톨릭(절대주의 왕권)
2)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의 대립
3) 성 바르톨로메오 학살사건
4) 앙리 4세
5) 당시 프랑스 종교 정책
6) 위그노 (Huguenot)
7) 프랑스 위그노 전쟁
8) 낭트칙령
9) 프랑스의 전후 상황
10) 부르봉 왕조
11) 종교전쟁에 의한 프랑스의 분열과 황폐

2. 영화 '여왕 마고'의 시나리오

3. 영화 감상평

본문내용

샤를 7세(勝利王)는 국토를 확보한 후 관료제를 정비하고 재정을 개혁하는 한편 상비군을 창설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그 다음의 루이 11세(재위 1461∼83) 시대에는 최강의 귀족 부르고뉴 공가(公家)가 멸망한 데 이어 아르투아 백령(伯領)·프랑슈콩테·앙주·멘·프로방스도 왕령에 병합되어 절대왕권의 기초가 다져졌다. 그의 아들 샤를 8세는 브르타뉴를 합병하고 이탈리아와 전쟁을 벌였다. 루이 12세(발루아오를레앙家, 재위 1498∼1515) 와 프랑수아 1세(발루아-앙굴렘家, 재위 1515∼47) 때에도 전쟁은 계속되었으나 그러는 동안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문화가 유입되었다. 또 당시 신대륙과의 무역이 이루어져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을 가져왔다. 이어 프랑수아 1세(1515∼47)는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를 놓고 에스파냐 왕 카를로스 1세(나중에 신성 로마 황제 카를 5세)와 다투어 패하였으며, 합스부르크가(家)와의 항쟁도 격화하였다.한편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은 1520년경부터 프랑스에도 파급되기 시작하였으며, 장 칼뱅을 중심으로 하는 엄격한 칼뱅주의가 형성되었다. 칼뱅은 파리에서 추방되어 제네바로 피하였으나 국내에서는 신구 양파의 분쟁이 심해졌다. 16세기 후반에는 8차례나 종교전쟁(위그노전쟁:1562∼98)이 일어났다. 종교적 분열은 마침내 성(聖)바르톨로메오의 학살과 같은 대참사까지 야기시켰다. 1589년에는 앙리 3세가 암살되었고 성왕(聖王) 루이 9세의 후예 부르봉가(家)의 앙리 드 나바르(앙리 4세:재위 1589∼1601)가 왕위를 계승, 발루아왕조가 종식되고 부르봉왕조가 창시되었다.앙리 4세는 스스로 카톨릭으로 개종한 뒤 ‘낭트칙령’(1598)을 반포하여 신앙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내란을 수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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