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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병의 신분, 무기, 조직, 전술

저작시기 1997.01 |등록일 2004.04.15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600원

소개글

사진도 포함돼 있습니다^^

목차

1. 의병의 신분
2. 의병의 무기
3. 의병의 조직
4. 의병의 전술

본문내용

① 의병의 身分
을미의병의 참여층은 지휘부와 병사층에 따라 유생과 평민으로 대별되어 나타난다. 지휘부는 주로 관료출신의 양반유생 또는 재지유생들로 구성되었다. 그 중에서도 화서학파, 노사학파, 정재학파, 남당학파 등 위정척사계열의 유생들이 중심이었다. 이들 척사계열의 의병 중 다수는 동학농민전쟁 시 동학군을 진압하는 데 참여했던 것으로 보여 동학농민전쟁과 의병투쟁의 정치사상적인 차이를 실감나게 한다. 그러나 지휘부에는 유생만이 아닌 吏族이나 평민들도 다수(전체의 약 14%) 포함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심지어 나주의병의 경우는 이족 출신이 지휘부의 44%나 차지하고 있으며, 해부의병의 경우는 전원이 포수 출신인 것으로 보아 을미의병의 지휘부에 평민 출신의 참여율이 예상외로 높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유생이라 할지라도 선대 중에 현직을 역임한 의병장을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몰락한 양반층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경제적 기반이 상당히 취약한 편이었으며 이러한 점은 의병 전력의 약화를 초래하게 하였다.
병사층에는 일부의 유생도 포함되었으나 주로 평민층으로 구성되었다. 그 중 포수가 주요 전투력이었으며, 그밖에 소작농민을 비롯하여 보부상, 해산군인, 소수의 청군과 잠적성이 강한 동학교도가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을미의병의 지휘부와 병사층간의 상호 관계는 효율적이지 못했다. 즉 전투수행 능력보다는 신분 또는 성분에 대한 차별적인 태도가 지나치게 강조된 측면이 있다. 그 결과 전력의 약화를 초래하였으며 결국은 전투의 패인으로 작용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계급 문제가 민족문제보다 우선시 되는 사상적 한계성을 노출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참고문헌>>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의병항쟁사> 1970
국권회복운동 <한국사 43> 국사편찬위원회 1999

<한국사 사진 자료집>
근, 현대 편 <한국역사입문 3> 한국역사연구회 엮음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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