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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최만리등 언문창제반대 상소문

등록일 2004.04.04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최만리반대 상소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많이 이용해 주세요~*

목차

崔萬理等 諺文創製反對 上疏文
上疏文의 內容
世宗大王의 反縛文

본문내용

「臣等伏覩諺文制作 至爲神妙 創物運智 出千古 然以臣等 區區管見尙有可疑者 敢布危懇 謹疏于後 伏惟聖裁」

- 신등(臣等)이 엎드려 언문의 제작을 살피옵건대, 지극히 신묘(神妙)하와 창물운지(創物運智)가 멀리 천고에 뛰어나나, 신등의 구구(區區)한 관견(管見)으로는 오히려 의심스러운 바가 있사옴으로, 감히 위간(危懇)을 베풀고 삼가 뒤에 조목(條目)을 드는 바입니다. 엎드려 생각하옵는 바, 거룩한 재결(裁決)을 바라는 바입니다.

이것은 세종 26년 2월20일에 최만리를 중심으로 한 집현전의 일부학자들이 훈민정음의 창제를 반대하기 위하여 세종에게 올린 상소문의 서두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이 반대 상소에 가담한 대표적인 학자는 최만리,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람들은 당시 집현전을 대표하던 쟁쟁한 학자들로 당대의 학풍을 주름잡던 사람들이다. 상소문의 내용은, 세종 28년 9월에 완성된 훈민정음의 정인지 후서 내용을 일일이 반박한 듯한 항목이 상당히 많다. 이것으로 보면, 世宗實錄에 상소문은 세종 26년 2월에 실려 있고,「後序」는 세종 28년 9월에 실려 있어서 전후가 뒤바뀌어 게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세종 25년(1443)에 완성된 신 문자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 때 여러 문신들 사이에서 상당히 논의가 거듭되었고 이러한 논의를 정리한 것이 「上疏文」과 「後序」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이 반대 상소문은 훈민정음을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다음은 상소문의 여섯 가지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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