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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과] 중국의 근대화

등록일 2004.03.30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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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편 전쟁 이전부터 왕륜(王倫)의 반란·천지회(天地會)의 반란·묘족(苗族)의 반란·백련교(白蓮敎)의 반란 등 중국 사회는 붕괴 조짐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으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러한 반란을 청조는 초기의 활력을 잃고 부패한 정규의 팔기군으로 진압하기에는 역부족(力不足)이었다. 반란의 예방을 위하여 민간의 무장을 허용하지 않던 청조는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지주·신사층이 주도한 민간의 무장을 허용함으로써 제국을 유지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반란의 평정에서 관료나 정규 팔기군(八旗軍)이 아닌 신사와 한족 지주의 역할이 증대되었다. 청조는 지방으로의 권력 분화를 대처하기 위해서 한족 대신 만주족을 대거 지방장관에 임명하였다. 하지만 신사와 한족 지주층의 활동증대에 따른 권력의 지방 분권화는 제어 할 수 없었다. 반란은 또한 강희제 이래 재정수입의 고정화 정책으로 국가규모에 비해 너무나 적었던 청조의 재정 상태를 만성적 적자 상태로 몰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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