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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사] 행주산성과 권율 -답사기-

등록일 2004.03.30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1. 권율과 행주대첩
2. 승리의 요인
3. 행주산성

본문내용

권율과 행주대첩

권율은 조선중기의 문신으로 1537년(중종 32)에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취당(晩翠堂), 모악(暮嶽)이라 하였다. 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권철이며, 이항복의 장인이었다. 그는 1582년(선조 15)에 46의 나이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으며, 이어 전적, 감찰, 예조좌랑, 호조정랑, 전라도 도사, 경성판관을 지냈다. 1592년 행주산성에서의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어 그해 6월, 도원수에 제수되었다. 1599년 노환으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7월에 죽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 1등에 영가부원군으로 추봉되었다. 1841년 행주에 기공사를 건립, 그해 사액되었으며, 그곳에 향사된다. 시호는 충장(忠莊)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율은 광주목사에 제수되어 바로 임지로 떠나게 된다. 왜병에 의해 도성이 함락된 뒤, 전라도 순찰사 이광, 방어사 곽영등과 군사를 모집하는 등 활동을 같이 하였으나, 이들의 무모한 공격에 독자적으로 천여명의 의군을 모집, 이치산성(梨峙山城)에서 동복현감(同福縣監) 황진과 전주로 들어오려는 고바야키와(小早川隆景)의 정예부대와 맞서 싸워 이긴다.

참고 자료

임진왜란과 권율장군, 전쟁기념관, 1999
정신문화연구원, 민족문화대백과 3, 23
행주산성 안내자료, 행주산성관리사무소
http://mahan.wonkwang.ac.kr/culture/98fall/road24.htm
http://provin.kyonggi.kr/kgtour/kyonggi_data/tour-4/m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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