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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 취수혼과 친족집단

등록일 2004.03.17 한글파일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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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취수혼(levirate)은 형제의 사후(死後), 다른 형제(兄弟)가 그 처를 취하여 아내로 삼는 혼속(婚俗)으로서, 형의 사후 동생이 형수(兄嫂)를 취하는 junior levirate가 일반적인 형태이다. 물론 유교적인 윤리관에서 볼 때, 취수혼(取嫂婚)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금수(禽獸)나 저지를 수 있는 행위로 인식되어 교형(絞刑)에 처해지는 등 근친상간(近親相姦)과 같이 중대한 범죄로 여겨져 왔지만, 당시 그 사회 안에서는 나름대로의 상당한 윤리의식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었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志 魏志 東夷傳)이나 위략(偉略)에 따르면, 부여(夫餘)나 고구려(高句麗) 초기에 이러한 취수혼이 왕실(王室)이나 사회전반에 널리 행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고구려 고국원왕(故國原王) 사후(死後), 왕의 동생인 산상왕(연우)이 왕위에 오르면서 선왕(先王)의 왕비인 우씨와 결합한 사실과 혼인 후에도 당시 지배층의 변함없는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당대 사회의 여러 정치세력 규합의 상징이자 그 결집체의 봉우리인 왕실(王室)에서조차 취수혼이 행해졌으며, 당대 사회 자체에서도 용인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라 하겠다. 또한, 당시 고구려 초기 왕위계승이 형제상속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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