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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 조선전기의 군사제도

등록일 2004.03.14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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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초기 군사제도의 정비
2. 5위체제의 확립과 중앙군제
3. 진관체제의 확립과 지방군제
4. 군령·군정기관의 정비
5. 군비의 확충

본문내용

1. 초기 군사제도의 정비

1) 초기 중앙군제의 정비

(1) 10위제와 특수부대

조선조는 개국한 지 9일만에 문무관제를 정하여 반포하였다. 이에 의하면 서반은 동반과 별도로 무산계(武散階)를 설정하여 구분하는 동시에 중앙군제는 10위로 구성 발표하였다.
건국 초기의 10위제도는 의흥친군좌·우위를 제외하고는 고려 말 거의 그 기능이 마비되엇던 중앙의 2군 6위를 그대로 준용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10위제도는 관료체제의 정돈과 연결시켜 재편성할 방향을 정한 것에 불과하였다. 즉 고려 말 중앙군은 무관의 관료체제와 군사조직의 실제가 동떨어져 있던 형편에서 갑자기 정비된 중앙군사조직이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正 이상의 무신에 대하여는 그 편성과 존재의 사실을 인정할 수 있으나 각 영이 실제로 군사를 귲등하게 편성하였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중앙군사력은 이성계의 친위부대인 의흥친군위에 집중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흥친군위는 이성계의 휘하 병사인 함경도 출신의 토착적 사병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그가 왕위에 나아가면서 중앙군의 실세로 등장한 것이다. 이들 친군위는 주로 궁성을 시위하고 왕의 행차에 배종했으며 왜구가 있을 때는 그들 가운데서 장수를 징모하여 일부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기도 한 핵심적 군사력이었다.
조선 건국 초기에는 10위와 더불어 중앙군으로서 고려 말부터 반법제적으로 두어진 성중애마(成衆愛馬)가 있다. 성주애마의 정확한 내용은 잘 알 수 없지만, 조선 초 궁성 호위제도가 자리 잡히기까지 그대로 존치되었으며, 군사적 비중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난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조선 건국 초기의 중앙군의 실태는 법제적인 측면에서의 10위와 사실상 중앙군사력을 이루고 있는 왕실 사병으로서의 의흥친군위 그리고 중신들의 사병적 성격을 띠고 있었던 시위패 및 반법제적인 존재였던 성중애마가 존치되어 있어 중앙군을 국가적 체제 아래 재편성하려는 노력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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