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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 조선왕조의 성립과 양반관료 국가

등록일 2004.03.14 한글파일한글 (hwp) | 1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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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국 초 왕권의 강화와 국정운영체제
▶개국 초 왕권의 강화
▶ 국정운영체제
2. 유교정치의 진전
-참고-
【과전법】
【도평의사사】

본문내용

1. 개국 초 왕권의 강화와 국정운영체제
▶개국 초 왕권의 강화
고려왕조는 무신집권 이후 왕의 권력이 거의 상실되었으며, 몽고의 침입과 홍건적·왜구의 침입으로 국가 존망이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이때 등장한 永興 출신의 무인 李成桂는 위화도회군을 계기로 정권·병권을 장악하였으며 무너지고 있는 고려왕조를 대신해 1392년 7월 17일 개경 壽昌宮에서 새 왕조를 세우고 왕으로 즉위하였다.
원·명 교체기에 고려조정은 종래와 같이 원과의 관계를 계속해야한다는 주장과 그래도 명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의 대립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명의 강압적인 태도는 고려의 강한 반발을 유발시켜 당시 무장이며 실력자였던 최영이 요동정벌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이 요동정벌은 고려조정내에서 많은 반향을 일으켰으며 이성계는 요동공격보다는 국내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하에 이성계는 위화도회군을 하게 되고 이런 갑작스런 회군에 당황한 우왕과 최영은 개경으로 돌아와 회군에 저항했으나 이성계의 군세를 당할 수 없었다.
위화도회군 이후 정치적 실권을 잡은 이성계 일파의 신진관료들에 의하여 정치개혁이 강력히 제기되고 추진되면서 척불운동도 점차 본격화하였다. 이러한 과전법실시와 척불운동은 토지를 광점한 권문세족 및 사원과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제개혁운동과 척불운동은 많은 권문세족과 정치권력과 결탁한 승려들의 반발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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