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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자연의 한계

등록일 2004.03.14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8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좌파의 대부분은 '녹색운동'과 사회주의 전망의 재편 속에서 희망의 원천을 찾는다. 나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며 그 희망을 함께하고 있다. 그러나 또한 녹색의 정치학과 문화 내의 중요한 흐름이 사회주의(그들이 이해하는 사회주의)에 대해서 적대적인 것도 사실인데 그에 비해 생태의 정치학의 등장에 대한 사회주의적 좌파의 주요한 반응은 매우 모호한 것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다음의 두가지를 논구하고자 한다: 첫째는 이러한 긴장과 적대감은 가장 영향력 있는 좌파의 지적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점차 떠오르고 있는 적/녹 [사이의] 토론을 촉진시키는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자 몇가지 새로운 개념적 '지표(marker)'를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 토론참가하는 에 몇몇 사람들은 사상과 활동에 있어 비맑스주의적 전통을 재평가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맑스주의 자체의 한계와 원천에 대한 지속적이고 엄밀한 탐구를 대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맑스가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은 독특한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나아가서 맑스주의 사상의 주요 흐름이 잘못되었거나 한계가 있었던 지점이 있다. 그 한계는 재앙적이면서도 널리 공유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의 노력은 이중적인 가치를 지닌다.
나는 한가지 모순을 언급함으로써 시작하려 한다. 맑스와 엥겔스는 그들의 철학적 입장을 자연주의자(naturalist)이자 유물론자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근대 과학이 인간 해방에 잠재적인 우호성을 가지고 있다고 -- 심지어는 인간 해방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 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과학적인 것으로 간주했고 1860년대의 혁명적 논쟁에서 다위니즘의 자연주의적 함의에 명백한 동의를 표현했다. 역사에 대한 그들의 유물론적 시각의 '맥락'이나 '전제'를 보여주는 수많은 언급들 역시 명백히 자연주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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