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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사] 사림의 득세와 붕당의 출현

등록일 2004.03.14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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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사림의 득세
2.붕당의 출현
3.붕당의 성격

본문내용

사림은 고려 말, 조선 초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두 차례의 사화(士禍)를 겪은 15세기 말엽에 와서 학문적으로는 사장(詞章)보다는 경학(經學)을 중시하였고, 경학의 기본 정신을 송대 신유학 가운데서도 성리학(性理學)에서 구하는 정치세력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본래 지방에 근거지를 가지고 있는 중소지주 출신의 지식인으로, 중앙의 정계에 진출하기보다는 지방에서 유향소(留鄕所)를 통하여 영향력을 행사해 오던 세력이었다.
중앙에서는 삼사(三司) 등 주로 언론 ·문필 기관의 관직을 통해 정계로 진출하여 훈신·척신(戚臣) 계열의 비리를 비판하는 언론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에 대한 훈신·척신의 보복으로 사화가 발생하여 그 세력이 크게 제거되었지만, 중종대에 다시 정계에 진출하여 조광조(趙光祖)를 중심으로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였다. 지방에서 서원(書院)과 향약을 토대로 기반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다가, 16세기 후반 선조의 즉위를 계기로 척신정치가 일단 종식되면서 중앙에 활발하게 진출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 후에는 척신정치의 척결문제를 둘러싸고 선배 관인과 후배 관인이 서인(西人)과 동인(東人)으로 대립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붕당(朋黨)으로의 분기가 거듭되고 일부 세력의 도태를 겪었으나,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을 계기로 17세기 후반까지 학연을 기반으로 한 서인·남인(南人)을 중심으로 붕당정치의 질서를 수립하였다.

참고 자료

한국사 30 『조선 중기의 정치와 경제』, 1998,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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