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역사학] 95개조 반박문

등록일 2003.12.17 한글파일한글 (hwp) | 13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입니다^^
생애와 그의 평가도 함께요~~

목차

Ⅰ루터의 생애와 종교개혁
1.마틴 루터의 어린 시절과 회심
2.수도원에서의 루터
3.비텐베르크의 루터
4.95개논제를 못박기까지
5.라이프찌히 논쟁
6.종교개혁 3대 논문
7.교회의 바벨론 포로
8.보름스회의
9.농민소요와 루터의 좌절
10.루터의 죽음
11.루터에 대한 평가

Ⅱ.95개조 반박문
1. 직접적 계기
2. 경과
3. 결과
4. 의의
5. 95개조 분류내용
6. 각 조항들의 설명

참고 문헌

본문내용

종교개혁의 기폭제는 면죄부였다. 중세의 참회제도에 의해서 사람은 완전하게 죄를 고백할수 없으며, 사제가 부과한 보속행위도 완전하게 행할수 없었다. 따라서 교리적으로 누구든지 영세를 받았으면, 지옥에는 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천국에도 가지 못하였다. 그래서 중세인들은 누구든지 연옥에 갈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연옥에서의 고통의 기간을 얼마나 단축시키느냐가 관심거리였다. 그래서 오직 자신을 위해서, 연옥에 있는자를 위해서 면죄부를 사는것은 중세의 미덕이었다.
1513년 교황의 자리에 오른 레오 10세는 전임자 율리오스 2세가 남겨놓은 재산을 탕진하였다. 르네상스 교황으로서 그는 베드로 성당의 건축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그렇지만 교황청의 재산을 탕진해버린 그로서는 면죄부를 다시금 발매하기로 결정했다. 레오10세가 선포하고 브란덴부르크의 알버트와 마인쯔의 대주교가 징수를 맡고 도미니크파 수도자 요한테첼이 판매하였던 면죄부는 루터를 그대로 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입성한 면죄부 판매인 요한 테첼은 "하늘문이 열리노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면죄부를 판매하였다. 다행히 비텐베르크는 프레데릭의 명련에 따라서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주민들이 인근 부근에까서 면죄부를 사오는 것을 보고 루터는 참을수가 없었다.
매년11월1일 모든 성자의 날을 기해서 프레데릭은 비텐베르크 대학의 성당에 보관중이던 유물을 무료로 개방하였으며 그날이 되면 많은 참배객들이 찾아오곤 하였다. 그래서 루터는 바로 이러한 점을 이용해서 유물에 보관되어 있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ㅂ주속교회당 정문에 95개에 달하는 면죄부 반박 논제를 못박아 게시 하였다.

참고 자료

『종교개혁 신학사상』, 이형기 지음, 장로회 신학대학교 출판부, 1997, 한길사
『인간■종교■국가』, 이문영, 2001, 나남출판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