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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

등록일 2003.12.17 한글파일한글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종교개혁에 관한 스코틀랜드의 역사학입니다

목차

1. 서 론

2. 본 론
1) 16세기의 스코틀랜드
2) 존 낙스와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
1. 존 낙스(John Knox, ca. 1514-1572)의 생애
1.1 청년기(1549년까지)
1.2 영국(1549-1554)과 제네바(1554-1559)에서의 낙스.
1.3 스코틀랜드에서의 낙스(1559-1572)
2. 낙스의 개혁운동
3. 결 론
참고 문헌

본문내용

그러나 16세기는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다. 영국과의 화친을 주장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잡았다. 한편 영국에서는 튜더 왕조의 첫 왕으로 등장한 헨리 7세가 장미 전쟁의 상처를 빨리 회복하고 근대적 의미의 민족국가를 수립하고자 프랑스와 제휴하고 있는 스코틀랜드에 화친의 손짓을 보내왔다. 그리하여 1502년경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James Ⅳ)는 영국의 헨리 7세(Henry Ⅶ)의 딸인 마가렛(Margaret Tudor)과 결혼하였다.
헨리7세에 이어 헨리 8세가 즉위했을 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평화가 공존할 것이라고 소망했지만, 헨리 8세의 정치적 야욕으로 인해 양국의 관계는 다시 악화되었다. 1511년 독일이 로마 교황의 주도하에 신성동맹을 결성하여 프랑스에 대항하게 되자, 헨리 8세도 신성동맹에 가입했고, 매형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헨리 8세의 이러한 행동에 분노한 제임스 4세는 1513년 군사를 일으켜 잉글랜드와 싸우다가 플로든(Flodden) 전투에서 전사했다. 1513년 제임스5세가 즉위했을 때 그의 나이 생후 17개월이었다. 제임스4세는 전장에서 임종시 후임 왕이 나이가 어리기에 왕비 마가렛을 섭정으로 세워줄 것을 유언했지만, 스코틀랜드 의회는 마가렛이 헨리8세의 누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유언을 집행치 않았고, 사촌인 알바니 공(Duke of Albany)을 섭정으로 프랑스에서 불러들였다. 확실히 헨리8세의 신성동맹가입이라는 정치적 행동은 스코틀랜드로 하여금 프랑스와의 유대를 전보다 더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헨리 8세 역시 스코틀랜드를 장악하고자 정치적 압박을 계속 가했다. 1542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다시 전쟁에 돌입했다.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잉글랜드로 끌려갔지만, 헨리 8세는 오히려 이들을 후대하여 귀환시켰고, 이들이 스코틀랜드에 돌아와 반프랑스, 반카톨릭적인 종교개혁 운동을 촉진시키는 촉매가 되었다.

참고 자료

스코틀랜드 종교사
스코틀랜드의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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