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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 동양의 산수화와 한국의 산수화

등록일 2003.12.16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참고 그림과 함께 동양의 산수화와 한국의 산수화를 비교해서 조사한 보고서입니다. 많은 이용바랍니다.

목차

1.산수화
2. 문인화와의 관계
3. 한국의 산수화
◎진경산수화의 등장

본문내용

1.산수화
산수화란 자연의 경치를 주제로 그린 동양화로써 인물·화조(花鳥)와 함께 많이 그려진다. 산수·수석(樹石) 등 자연의 경치를 그린 것으로, 산수화의 역사는 수묵화와 거의 비슷하다. 산수화의 시대적 특징을 살펴보면 중국의 한대(漢代) 무렵까지는 신선도(神仙圖)의 일부분으로서 그려졌었고, 또 독립된 산수화의 경우에도 종교적인 상징의 의미를 띠고 그려졌다.
육조시대(六朝時代)에는 산수화에 대한 여러 가지 활동이 전개되었는데 고개지(顧愷之)의 《화운대산기(畵雲臺山記)》등 산수화론도 나왔고, 사혁(謝赫)은 《고화품록(古畵品錄)》에서 산수화의 요체가 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을 화육법(畵六法)의 첫째로 꼽는 등 그때 이미 산수화의 개념이 확립된 것으로 추측한다. 실제로 당대(唐代)에 이르러서는 산수화분야가 정착되고 왕유(王維)·이사훈(李思訓)·오도현(吳道玄) 등이 수묵이나 채색한 산수화를 그려 화풍상 남종화(南宗畵)와 북종화(北宗畵)의 두 경향을 낳았다. 그럼 여기에서 남종화와 북종화의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자.
◎남종화
남종화는 남화(南畵)라고도 한다. 북종화(北宗畵)에 대응되는 말로써 북종화가 화원(畵員)이나 직업적인 전문화가들을 중심으로 경직(硬直)된 선묘를 사용하여 그린 장식적이면서도 공필(工筆)의 그림을 의미하는 데 반하여, 남종화는 대체로 인격이 고매하고 학문이 깊은 사대부(士大夫)가 여기(餘技)로 수묵과 담채(淡彩)를 사용하여 그린 간일(簡逸)하고 온화한 그림이다. 명나라 때 동기창이 《화지(畵旨)》 《화안(畵眼)》 등 그의 문집 속에서 당대(唐代) 선종(禪宗)에 남 ·북종이 있음을 주목하고, 회화에서도 남 ·북종을 구분하였다.

참고 자료

1.인왕제색도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비 갠 후의 인왕산의 모습을 직접 본 듯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바라본 인왕산의 모습은 바위가 흰빛에 가까운데, 이 바위는 진한 먹빛을 띠고 있다. 비 온 후의 젖은 바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붓을 뉘어 쓸어내리듯 표현한 바위는 바위산인 인왕산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 전경에는 진한 숲이 있고 사이사이 구름이 에워싸고 있다. 진한 숲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정상의 바위산과 만나게 된다. 하반부로부터 자욱이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길게 띠를 이루면서 점차 위로 번져 났으니, 오른편 아래쪽에 기와집이 일부 드러났지만 다른 많은 집들은 모두 다 가려졌다.

반면에 화면 상반부는 아직 채 흘러내리지 못한 빗물이 평소에 없던 세 줄기 작은 폭포까지 형성하며 세차게 쏟아지고 있다. 정선은 비에 젖어 평상시보다 짙어보이는 화강암봉을 큰 붓을 뉘여 북북 그어 내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거듭 짙은 붓질을 더함으로써 거대하고 시커먼 바위산의 압도적인 중량감을 표현하였다.

주된 봉우리의 윗부분은 약간 잘려 나갔으며, 좌우나 아래쪽도 바깥이 생략되었다. 그러므로 보는 이는 인왕산의 주봉이 망원 렌즈로 당겨진 듯 성큼 다가선다는 인상을 갖게된다. 거대한 암벽은 매우 빠른 붓으로 늠름하게 쳐내렸고 골짜기에 피어 오르는 물안개와 축축한 솔밭에는 푸른 빛이 배어 나오도록 먹빛깔의 농담을 묘하게 가려 썼다.

그러나 무엇보다 압도적인 중량감을 지닌 주봉의 봉우리가 약간 잘려서 화면의 상변과 맞닿아 있는 점이야말로 참으로 극적인 구성이라 하겠다. 이렇게 소재의 일부를 생략한 구성은 회화적으로 아무런 무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점이 작품의 예술성을 더욱 드높인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인왕제색도>가 갖는 강렬한 표현력은 그 굳세고 빠른 필력과 변화무쌍한 묵법에도 기인하지만 전체 구도에 힘입은 점이 가장 크다고 생각된다. 정선이 75세의 만년에 그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필묵이 보는 이를 압도하는 정선 진경산수화의 걸작이다.

2.김홍도의 총석정도
김홍도는 왕명을 받들어 여러 곳을 여행하며 곳곳의 명승을 화폭에 담았다. 이 〈총석정도〉는 여행할 때 제작한 초본(草本)과 그때의 인상을 토대로 하여 나중에 제작한 것으로 《을묘년화첩》에 들어 있는 것이다.

이 화첩은 그가 50대에 들어서면서 자신감 넘치는 필치를 구사하던 때의 작품으로, 김홍도 화풍의 변천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림에 적힌 관지(款識)에 의하면 1795년 그의 후원자인 김경림(金景林)에게 그려준 것이다. 총석이나 소나무의 묘사에서 언뜻 정선의 수직준법의 영향이 보이지만, 그와는 다른 김홍도의 필치 또한 역력하다. 총석의 왼편 물결 위에 날고 있는 두 마리 작은 물새의 표현이 재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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