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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미술사] 한국의 근대 누드화

등록일 2003.12.08 한글파일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4,000원

목차

1.서론

2.본론
1)동아시아 누드화의 시작
-일본의 누드화 수용과정을 중심으로

2)우리나 근대미술에서의 누드화
①김관호 석모 이후
②해방이후의 누드화

3.결론

본문내용

19세기 후반 서구문화와 더블어 서양미술의 새로운 기법과 주제가 한국, 일본, 중국의 화단에 들어오면서 기존의 미술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서양미술의 누드 표현은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인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특히 동아시아 삼국인 한국, 일본, 중국의 전통문화에서는 이질적인 소재였다 누드화는 도입 초기에는 상당한 놀라움과 마찰을 빚었지만 점차 미술의 형태로 인정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한국의 화가들은 일본에서 미술학교 과정을 수료하고 서양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글에서 일본과의 연관 관계를 고려하면서 우리의 근대 누드화 수용과정과 작가들을 알아보기로 하였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엽에 이르러 새운 문물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는 비로소 정치문화면에서 국제적인 흐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서양의 이질적인 문화는 우리나라 사회의 여러분야에 새로운 요소를 제공해 주기도 했지만 반면에 전통적인 풍습과 마찰을 빚거나 반발을 사는 경우도 많았다. 미술분야에서도 1910년를 전후로 우리나라 화단에 서양화가들이 등장하면서 기본 훈련을 위해 누드 데생이나 누드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한국의 전통문화에서는 생소했던 이 소재는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에 젖어있던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큰 충격이었다. 서양에서는 미와 조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누드가, 효행과 신분적 지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신체와몸가짐, 의관을 단정히 하는 것을 중요시하던 우리나라의 관습에서 수치스러움과불경스러움, 당혹감으로 인식되었던 것은 이해하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찍이 서양에서 그려진 누드화, 또는 신체가 드러나 회화를 보고 충격을 받은 예가 18세기 중국을 다녀온 사행원들의 기록에서 발견된다. 그들은 그곳의 천주당이나 악라 사관에서 본 서양화의 "산발한 머리와 벌거벗은 몸"에 대해 불쾌감을 표명했다.1)
그러나 천장화에 묘사된 많은 아기 천사들에 대해서는 "살결을 만지면 따뜻할 것 같고 팔목이며 종아리는 살아 포동포동 쪄 있었다"라고 놀라워 했다.
우리나라 화가가 그린 누드화에 대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는 초기 일본 유학생중 두 번째 서양화가로 꼽히는 김관호가 1916년 동경 미술학교의 졸업작품으로 그려 제10회 「문무성 미술전람회」에서 특선한 〈석모〉에 관한 내용이다. 이 작품의「문전」입선은 당시 신문에 대서 특필되었으나 "벌거벗은 그림 인고로"사진으로 거재되지 못했다.2)

참고 자료

김영나. 『20세기 한국미술』. 예경. 1998
홍선표. 『한국현대 미술의 흐름』. 일지사 1998
이구열. 『한국의 누드미술60년』.을유문화사
이와사키 요시카주, 『일본근대미술』. 예경. 1998
이구열. 『근대 한국미술사의 연구』. 미진사. 1992
오광수. 『한국 현대미술사』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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