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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시대구분을 통한 백제사의 재조명

등록일 2003.12.12 한글파일한글 (hwp) | 19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한국사연습 수업 시간에 3명이 발표했던 발표문입니다. 열심히 여러 자료들 찾아보고, 학자들의 의견들도 많이 실어 놓았습니다. (목차는 간략히 썼지만 세부 내용은 더 자세해요~)보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포인트는 10포인트입니다.

목차

Ⅰ. 序論

Ⅱ. 本論
1. 百濟의 建國
2. 百濟史의 時代區分
3. 수도변천과정에 따른 百濟史 조명

Ⅲ. 結論

본문내용

Ⅰ. 序 論

백제사(百濟史)에 있어서 관건이 되는 문제는 『삼국사기 三國史記』,『백제본기 百濟本紀』초기기록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와 시대구분의 문제일 것이다. 우선 『삼국사기』『백제본기』초기기록을 보는 입장을 나누어 보면, 일인(日人) 학자들에 의해 거론되어 온 초기기록 불신론(不信論)이다. 이것은 중국사서에 실린 교섭기사를 기준으로 하거나 왕위계승관계기사를 기준으로 하여 초기기록의 내용과 왕계를 검토하여 초기기록을 부정하였다. 이와는 달리 고고학적 연구가 진행되면서 『삼국사기』의 기록을 믿을 수 있다는 경향이 등장하고 있다.
우선 김철준씨는 국가의 기반이 성립되기 시작한 것은 고이왕(古爾王)때로 보고 있으며 시조 온조(溫祚)에서 제 6대 구이신왕(久爾辛王)에 이르기까지 세계가 실재(實在)하였으며 어느 정도의 권위를 지니고 있었다고 보았다. 그 근거로 근초고왕(近肖古王)의‘近’자를 제시하고 있다. 이종욱씨의 경우도 고이왕대에 중앙집권적인 전제왕권이 확립되었다고 보아 초기기록을 신빙하고 있으며 천관우씨는 온조왕대에 이미 영역국가로의 발전이 있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신빙론의 대두는 근초고왕이전의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극단적인 부정론을 극복하기 위해 대두된 것인데, 이는 학계의 고착된 백제사 연구에 새로운 활로를 열어준 계기가 되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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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수,『위대한 백제왕국』, 고려서적,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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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백, 「백제왕위계승고」,『역사학보』1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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