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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 대원군과 민비 비교

등록일 2003.12.10 한글파일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700원

목차

-ready-
=대원군과 민비의 만남
=대원군과의 갈등 시작
=대내/외적 배경

-fight 1- (대원군 win)
= 대원군의 개혁정책
= 대원군 개혁정책의 의의

-fight 2- (민비 win)
= 민비의 개화정책
= 민비 개화정책의 의의

본문내용

▶ 민비의 개화정책
민비는 갖은 방법으로 흥선대원군을 정계에서 물러나도록 공작하여 마침내 대원군의 정적(政敵:趙成夏를 중심으로 한 趙大妃 세력, 趙斗淳·李裕元 등 노대신 세력, 金炳國을 중심으로 한 안동김씨세력, 대원군의 장자 載冕과 형 李最應 세력 및 崔益鉉 등 유림세력)과 결탁하고, 최익현의 대원군규탄 상소를 계기로 흥선대원군을 하야시켰다.

⇒ 개혁정책의 반전
대원군의 측근자들은 모두 주요관직에서 내쫓고 중앙과 지방의 높고 낮은 관직들에 민가문벌 양반들과 그 측근자들을 앉히고 1874년 철폐되었던 만동묘를 복구하고, 잇다른 서원들의 전면적 복구와 서구자본주의 상품의 국내 유입 허용하였다.

⇒ 친청정책
대원군의 실각 후 민씨척족을 앞세워 정권을 장악하고 고종을 움직여 근대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고 일련의 개화시책을 승인했다. 1882년 민씨 정부의 정책에 불평을 품어온 위정척사파와 대원군세력이 봉량미(俸糧米) 문제로 폭동을 일으킨 구군인을 업고 쿠데타를 감행하자, 민비는 재빨리 (舊軍人)의 세력궁중을 탈출하여 충주목(忠州牧) 민응식(閔應植)의 집에 피신하였다.그러나 이때부터 민비는 친청사대(親淸事大)로 흐르게 되어 개화파(시해>이때의 정開化派)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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