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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시대와 청대의 유학

등록일 2003.12.09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700원

목차

송명시대의 유학
왕양명의 사상

청대의 유학
황종희의 명이대방록
고염무의 학문관

본문내용

왕양명의 사상
1449년 토목(토목)의 반란 이후 명대 사회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면서, 각종 사회문제가 드러나게 되었다. 우선 황실, 환관, 훈척 등의 정치적 특권을 이용한 토지 겸병의 추세가 날로 증가하였으며, 그에 따라 백성의 지세와 부세 또한 날로 무거워져 갔다. 이러한 이중의 고통 속에서 대다수의 백성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유랑민이 되는 길을 선택하였으며, 이것은 결국 민중 봉기로 폭발하게 된다. 한편 사상적으로 살펴볼 때 당시의 관학은 이른바 정주학이었다. 송과 원을 거쳐 명이 들어선 후에도 정주학은 관학으로서의 위상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그런데 역사상에서 하나의 이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단 그것이 사회를 지도하는 사상으로 받아들여진 이후에는(관학화된 이후에는), 아무리 그 이론이 건전하고 체계적인 것이었다고 할 지라도 경화되면서 변질되는 모습을 더러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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