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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여운형과 해방후 좌우합작운동

등록일 2003.12.05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300원

소개글

사학 교양과목에서 만점 받았던 과제물입니다.

목차

여운형과 해방후 좌우합작운동

들어가면서

1.건국준비위원회
1)건국동맹
2)해방과 건국준비위원회
3)건준의 성격
2.인민공화국
1)미군의 상률과 인민공화국의 창설
2)인민당의 창설
3)인민당의 성격
3.좌우합작운동
1)좌우합작운동의 배경
2)좌우합작운동
3)조공의 반대와 좌우합작운동의 분열

맺음말

본문내용

들어가면서

해방후 전국은 그야말로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그 동안 방법은 다르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이라는 공동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력해오던 좌익과 우익은 분열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성취한 이들은 더 이상 협력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독립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각기 다른 청사진(靑寫眞)을 그리고 있었다. 좌익은 사회주의에 입각한 평등한 유토피아를. 우익은 민주주의에 입각한 자유 민족국가를. 두 입장 모두 궁극적으로 민족의 행복한 미래를 추구하는 것이었지만, 정치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양 축을 타협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그렇게도 '목숨걸고 싸웠던' 이데올로기는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냐는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여겼던 이데올로기라는 것의 정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의 창조와 경험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선진 이론의 무비판적인 수용에 의한 것이었다. 즉 아직 검증되지도 않은 논리 때문에 민족적 대의인 '단합된 민족국가 건설'에 소홀했던 것이다. 당시 그들은 조국을 자신들이 신봉하는 이론들의 실험장쯤으로 여겼다.
이처럼 정치적 입장이 독립된 국가 건설을 방해하던 시기, 즉 수단과 목적이 도치된 모순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정책이 '좌우합작운동'이었다. 여운형이 중심이 된 이 운동은 '선민족국가건설노선'을 표방하면서 공리공론(空理空論)에 따른 좌우익의 분열을 지양(止揚)하고 협력해 '단합된 민족국가 건설'의 대의를 이루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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