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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김현영-냉장고

등록일 2003.12.05 한글파일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현대문학 1997.5월호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편소설 중 하나입니다. 감상잘하세요^^

목차

없음

본문내용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카트린만도 못한 놈인 것 같다.
오늘 아침 식탁에서도 그녀는 바케트빵의 속을 뜯어내고 있었다. 빵의 속살을 뜯는 그녀의 손놀림은 늘 최고의 운만을 점찍는 주사위를 던지듯 경쾌했다. 길이가 50센티는 되어 보이는 바케트의 뾰족한 끝을 잘라내고서 뜯어내 속은 우묵한 그릇으로 떨어지고 있었고, 바케트와 그릇 사이에선 와인빛 매니큐어를 칠한 그녀의 뾰죽한 손톱이 비행하고 있었다. 바게트의 본체에서 이탈한 빵조각들이 부스러기 하나 흘리지 않고 정확히 그릇에 담겨지는 것이 나는 불만스러웠다. 그것은 그녀의, 다른 여자가 아닌 바로 그녀의 손톱이라는 와인색 비행기에 실려 막 생애 최고의 비행을 하고 있는 빵조각들에 대한 적의였다. 이제 그릇에 안전하게 착륙한 저 빵조각들은 황홀했던 비행을 다시금 떠올리며 곧 포근한 회상과도 같은 우유에 젖어들 테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우유에 적신 한 접시의 빵은 언제나 카트린의 것이었다. 카트린은 치와와다. 치와와는 애완견의 일종이고 애완견은 말 그대로 애완용 개를 가리킨다. 복잡하게 말할 것도 없이,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하면, 한마디로 카트린은 개다, 라는 것이다. 나는 카트린만도 못한 놈이다. 즉, 나는 개만도 못한 놈이다.
그녀는 녀석, 아니 년의 둥그런 눈동자와 기타줄처럼 가느다란 늑골이 드러난 마른 몸집을 볼 때면 애처로운 아기 사슴을 보는 것만 같다며 아름다운 눈에 금방 눈물방울을 만들어 달곤 했다. 내게는 녀석, 아니 년의 애처로움이 내숭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진주 같은 눈물방울을 안경인 양 쓰고 보면 카트린의 내숭이 바로 내숭이라는 이유로 애처로워 보이기도 했다. 왜 마음에는 늑골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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