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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문화] 고려청자에 관한 조사

등록일 2003.11.30 한글파일한글 (hwp) | 15페이지 | 가격 2,700원

소개글

학기중 과제로 작성한 논문입니다.

목차

Ⅰ.머리말

Ⅱ.청자란

Ⅲ.청자의 발생

Ⅳ. 고려청자 특징 및 발달과 종류
1)고려청자의특징
2)고려청자의 발달
3)고려청자의 종류

Ⅴ. 고려청자의 제작과정

Ⅵ.맺음말

본문내용

Ⅲ청자의 발생

청자의 발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종전에 일본인 학자들은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순화4년」 명 항아리를 예로 들어 993년에 초보적이고 원시적인 청자로 출발하여 11세기에 들어서야 청자다운 청자를 만들기 시작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학문의 진전에 따라 이러한 학설은 잘못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962년부터 국립박물관에서 우리 나라 도자기 가마터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시작하여 청자 가마에 대한 조사도 20년 이상 계속하고 있다. 그 결과 전남 강진군 대구면 일대의 청자 가마터 조사, 인천시 북구 경서동 녹청자 가마터에 대한 조사 등의 연구 진척으로 초기 청자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가운데 중국, 일본 등지에서도 여러 조사가 진행되어 우리의 초기 청자 발생에 대한 여러 가지 새로운 근거를 더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 서남해안에는 초기 청자 가마가 많다. 그 대표적인 가마는 전남 강진군 대구 면(大口面)과 칠량면(七樑面) 일대에 있으며 이 밖에 전북 고창군 아산면 용계리, 전남 고흥군 두원면 운대리 등이다.
이들 가마에서는 대접과 접시를 위주로 여러 가지 생활 용기를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대접 한 종류의 형태와 굽 모양이 중국 절강성 동북부에서 번조되는 월주요의 청자 대접과 거의 같다는 데 시점을 맞추어 본 것이다. 이 대접의 형태는 측사면이 직선으로 뻗고 굽다리가 낮고 그 바닥 면이 넓다. 또한 굽고 난 다음에 잘 떨어지도록 그릇과 도지미 사이에 내화토눈(耐火土目)을 받쳐서 번조하였다.
중국 쪽 보고서에 의하면 위와 같은 소위 햇무리굽 대접 등은 8세기부터 번조하기 시작하여 10세기 전반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일본에서는 그때 이러한 햇무리굽 청자를 수입하여 사용했으며 일부 그릇을 토기로 방제 한 것도 대략 10세기 중엽까지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에서도 중국 월주요청자의 햇무리굽 대접과 거의 똑같은 청자 대접을 후대에 만들었을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시로서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100년 뒤에 같은 것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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