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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조선 후기 신분제변화에 대한 두 견해

등록일 2003.11.19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미흡하지만,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많이들 애용바랍니다.

목차

목차
1. 들어가며
2. 송준호 교수의 견해
1) 양반이라 지칭된 사람은 모두가 양반인가?
2) 왜 그렇다면 사람들은 '유학' 이라는 표현을 보편적으로 사용했는가?
3) 과연 양반으로의 신분조작이 그렇게 쉬운가?
4) 족보가 있다고 해서 양반은 아니다.
3. 정석종 교수의 견해
1) 양반층의 분화
2) 농민층의 분화
3) 노비계급의 신분해방
4. 결론

본문내용

본래 조선 초기 양반이란 관제상의 개념이었다. 976년 전시과를 실시하면서 시작된 이 관제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지배신분층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그 숫자 역시 고려 후기보다 현격하게 줄어들어 소수의 특권층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양반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몰락했고, 18∼19세기경에 이르러서는 신분제의 문란과 함께 신분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그 숫자가 대폭 증가했다. 이 때 국가에서도 납속책, 공명첩 등을 대거 배포해 국가의 재정을 채우는 수단으로 이용, 신분제의 몰락을 도왔다. 그러나 상당수가 유학모칭, 족보 위조 등의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양반 이동을 꾀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천인은 양인으로, 양인은 중인으로, 중인은 양반으로 신분을 상승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고, 다수의 양반과 소수의 상민·천민으로 신분구조가 변모되었다. 이때부터 ‘양반이니, 평민이니, 천민이니’하는 것은 거의 유명무실해졌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까지 전해져오는 학계의 통설이다.
그러나 송준호 교수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조선 후기 신분제가 해체되었다는 학계의 통설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에도 신분제는 해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참고 자료

송준호, 『조선사회사연구』, 일조각, 1987.
송준호, 〈조선양반고 - 조선조 사회의 계급구조에 대한 시론〉, 『한국사학4』, 한국정신문 화연구원, 1983.
이희근, 『한국사는 없다』, 사람과 사람, 2001.
정석종, 〈조선후기 사회신분제의 붕괴〉,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원,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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