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평가점수D

[역사] 살수 대첩에 대하여

등록일 2003.08.08 한글파일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동천왕이 관구검난을 당한 후 국도를 [평양성]으로 옮겼는데 그 [평양성]은 지금 환인이라는 명제를 논증하는 과정에서 [패수]는 지금 압록강이라는 역사사실과 [압록수]는 지금 요하라는 역사사실을 함께 논증했다. 따라서 [살수]는 [압록수·패수]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자연스럽게 도출했다.
지금의 요하와 지금의 압록강 사이에 위치할 것이 전제되고, [평양성(환인)] 이서·이북에 소재 해야 한다는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강·하는 3개가 있다.
그것은 고구려 건국초에 비류수로 지칭되었던 지금 태자하와, 졸본천으로 지칭되었던 혼하, 그리고 지금 송화강 지류인 휘발하가 그것이다.
태자하와 혼하가 고구려 국초에는 비류수와 졸본천으로 지칭된 것은 틀림없는 역사사실이지만, 그로부터 거의 6백여년이 지난 수·당 시절에는 그들 하천명이 무엇으로 바뀌어 있을 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 세 하천 중 하나가 [살수]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문제는 부여도 등으로 북진로를 택해 진군한 우문술 등이 유진한 [압록수 서편]을 어느 지점으로 예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고구려 영양왕 23년 6월에 우문술 등 북진로로 진군한 9군이 [압록수 서편에 모였다]고 고구려본기 기사는 전하고 있고. 이 달에 고구려왕이 [대신 을지문덕을 시켜 수영에 가서 거짓 항복케] 하면서 적정을 살핀 사실을 전하고 있다.
한편 같은 달인 영양왕 23년 6월에 수양제는 요동성([졸본];요양) 공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으므로, 북진 9군을 이끈 우문술등의 유진소는 [압록수(요하) 서편]이되 요동성에서 북쪽으로 상당히 떨어진 지점에 위치했을 것이라는 점을 상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이 수양제가 요동성을 공격하고 있는 틈을 뚫고 [압록수(요하)]를 건너 적진 깊숙히 우문술등의 군영을 찾아갔다고는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