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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기점논쟁

등록일 2003.07.12 한글파일한글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들어가며

2. 1903년 도입설 <황성신문>

3. 최소한 1900년 이전 -조희문, 안종화

4. 1897-1898 도입설 <이스트 하우스>
① 에스터 하우스의 기사 : 에스터 하우스
② 심 훈과 손위빈
③ 김정혁과 이구영

5. 기타 시기 도입설

6. 나가며

7. 참고문헌

본문내용

이 광고가 우리나라에서 영화가 일반에게 상영된 영화시작의 확실한 검증자료이다. 이것이 현재 문헌상으로 남아있는 최초의 공식적인 활동사진 기록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많은 영화사가들은 이 설을 지지한다.
시인이자 영화평론도 썼던 ‘임화’는 <조선영화발달소사>(1941)에서 1903년 영미연초회사가 담배선정을 겸하여 영화를 상영했으며 1904년에는 원각사에서 프랑스 파테 사의 작품을 상영했다고 썼다. <조선영화 30년사>(1943)를 쓴 조선영화문화연구소의 ‘이창용’도 이 설을 지지하며, <한국영화전사시대 및 발생기의 특성에 관한 연구>논문을 쓴 이청기, <한국영화전사>(1969)를 쓴 이영일, <한국 영화발달사>(1980)를 쓴 유현목도 1903년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영화 도입 시기에 관한 객관적 입증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1093년 동대문 전기회사 기계창의 활동사진 공개’는 정설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한성전기 회사가 동대문 전차 차고 및 발전소 부지 안에 영화 상영 시설을 갖추고 외국인을 위한 특별관람석 까지 마련하여 은행에 들어간 동대문 전기 회사 활동사진 관람소가 부각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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