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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발해사 정리

등록일 2002.06.21 | 최종수정일 2017.09.04 한글파일한글 (hwp) | 7페이지 | 무료

목차

발해의 그 화려한 역사
발해-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층은 말갈족

발해의 왕
제 1대.. 고왕(高王/?~719)
제 2대.. 무왕 (武王/?~737)
제 3대.. 문왕(文王/?~793)
제 4대.. 대원의(폐왕,大元義/?~794)
제 5대.. 성왕(成王/?~795)
제 6대.. 강왕(康王/?~809)
제 7대.. 정왕(定王/?~812)
제 8대.. 희왕(僖王/?~817)
제 9대.. 간왕(簡王/?~818)
제 10대.. 선왕(宣王/?~830)
제 11대.. 대이진(大彛震/?~?)
제 12대.. 대건황(大虔晃/?~?)
제 13대.. 경왕(景王/?~893)
마지막 왕.. 애왕(哀王/?~?)

발해의 사회와 문화
사회구성
문화
발해의 경제

본문내용

발해의 그 화려한 역사

발해-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층은 말갈족

668년 고구려 멸망 후 당은 고구려의 옛 땅을 지배하기 위해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했으나, 유민의 저항이 심하자 치소를 요동의 신성으로 옮겼다가 30년 만인 698년에 결국 폐지했다. 이후 요동지방에는 고구려유민 중심으로 자치국인 소고구려국을 세워 9세기 초반까지 유지했다. 안동도호부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696년 무렵 전통적으로 중국 동북방의 이민족을 제어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중시되던 요서지방의 요충지 영주에서는 당의 압제에 시달리던 거란족이 이진충과 손만영의 지도 아래 반란을 일으켜 이 일대를 혼란에 빠뜨렸다. 1년 여에 걸친 반란의 와중에서 고구려 멸망 후 강제로 이 지역에 옮겨져 살던 고구려유민과 말갈족들이 대조영과 걸사비우의 지도 아래 영주를 빠져나와 만주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를 저지하던 당군과의 전투에서 걸사비우가 죽자, 대조영은 말갈족들을 거느리고 당군의 추격을 물리치면서 동만주지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698년 당시 계루부의 옛 땅으로 일컬어지던 지린 성 둔화 현 육정산 근처에 성을 쌓고 나라를 세워 진국이라 했다. 현재의 아오둥산청과 청산쯔산청 그 유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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