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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사 분야 관련 자료(조선시대 신분제)

등록일 2002.05.29 한글파일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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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태종실록 태종8년 2월 8일 정해 / 인을 뽑다
생원 시원(生員試員) 변계량(卞季良) 등이 윤수(尹粹) 등 1백 사람을 뽑았다. 초시일(初試日) 개장(開場)할 때에 김관(金寬)이라는 자가 대가(大駕)앞에 꿇어앉아 말하기를,“신(臣)은 선주(善州) 사람입니다. 지금 삼관(三館)에서 신(臣)의 조계(祖系)가 비천(卑賤)하고 한미(寒微)하다 하여 쫓아냅니다.”
하였다. 임금이 불쌍히 여겨 곧 성균 장무(成均掌務)를 불러 말하기를,“이 사람의 조계(祖系)가 만일 양천(良賤)을 변명(辨明)할 정도가 아니거든 부시(赴試)하게 하라.”
하였다. 김관이 부시(赴試)는 하였으나 마침내 합격하지 못하였다.
세종 064 16/04/16(계해) / 서자를 세워 종사를 주장케 하는 문제를 논의하다
오늘날 양민이라 부르는 자는 등급(等級)이 하나가 아니옵니다. 비록 의관(衣冠)·벌열(閥閱)의 후손이 아니라 하더라도 상하(上下)·내외(內外)의 구별이 있는 자가 있는가 하면, 비록 상하·내외의 구별은 없으나 대대로 평민인 자가 있사오며, 몸은 천하지 아니하되 천민과 다름이 없는자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는 역리(驛吏)·보충군(補充軍) 같은 자들까지도 통틀어 양민이라고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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