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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속] 기우제

저작시기 1997.01 |등록일 2002.05.04 한글파일한글 (hwp) | 1페이지 | 가격 3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비는 우리와 같은 농경민족에게는 생존의 근원이자 국운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가뭄때 지내던 기우제는 생존을 위한 것으로 고대부터 내려오는 국가적 행사였다. 자고로 왕-군주-이라는 존재는 우사(rain maker)라 여겨졌기 때문에 나라에 가뭄이 드는 것은 왕이 덕이 없기 때문에 내리는 벌로 여기기도 했다. 그래서 가뭄이 심하면 왕은 음식을 먹지 않고 밖에 움집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혼자 생활하는 등 거처를 옮겼으며 자신의 정치가 너무 혹독하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하며 죄인을 재심리하여 무고한 백성들을 풀어 내보내 주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종묘사직과 구월산, 남남북교, 임해원 등에서 무당이 기우제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종묘사직, 4대문, 한강등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장기간 비가 오지 않을 때는 12차례에 걸쳐 3품이상의 제관을 보내어 기우제를 주관하게 했다. 이는 비 다스리는 것을 국가존립의 근본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우제는 음양조화와 유감주술이라는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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